탈주극 도박사범 베트남인 모두 검거…도주 35시간 만

23명 중 14명 불법체류자…출입국사무소 인계
강제추방 두려워 도망쳤으나 상당수 자수 선택
경찰, 수갑 착용·감시 소홀 등 별도로 감찰 예정

국내 체류중인 자국인들을 불러 모아 도박판을 벌여 현행범 체포된 베트남 국적 외국인 23명 중 10명이 지구대에서 집단으로 달아났다가 도주 35시간 만에 모두 붙잡혔다.



지구대가 어수선한 사이 도망친 이들은 불과 20도 각도로 열리는 너비 90㎝ 환풍창을 통해 탈주, 지인 등의 도움을 받아 광주와 전남·북 각지로 흩어졌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면서 수배자 신세로서 오래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하나둘 자수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 적절한 도주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경찰의 허술한 보안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간 큰 외국인들' 지구대서 집단 탈주

광주 광산경찰서는 불법 도박장을 열어 도박을 하고 붙잡혀온 지구대에서 달아난 혐의(도박장개설·도박·도주) 등으로 베트남 출신 외국인 2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또 이들 중 불법체류자로 확인된 14명에 대해서는 신병을 출입국사무소로 인계했다.

이들은 전날 오전 3시께 광산구 월곡동 한 주택에서 불법 도박장을 연 뒤 1000여 만 원대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다.

또 이들 중 10명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 월곡동 월곡지구대 회의실에서 조사를 기다리던 중 경찰의 감시를 피해 달아난 혐의도 받는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10일 밤부터 판돈 1500여만 원을 걸고 홀짝을 맞추는 전통 도박 '속띠아'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다음주부터 출입국관리소 차원의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면식도 없는 같은 국적 체류자들을 불러 모았다.

도박을 벌이던 이들은 전날 오전 3시 16분께 '월곡동 한 주택 2층에서 집단 도박을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 체포됐다.

이후 이들 중 10명이 전날 오전 6시 40분께 월곡지구대에서 집단으로 탈주해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도망친 이들은 탈주 직후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35시간여 동안 순차적으로 자수하거나 검거됐다.

10명 중 3명은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이용해 추적한 끝에 전날 오후부터 이날까지 지인의 집 등지에서 붙잡혔다.

7명은 광주를 비롯해 전남·북 각지로 도망쳤다가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출입국관리소 등을 통해 자수했다.

도망친 이들은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기초 조사를 마친 뒤 출입국사무소로 신병을 인계할 방침이다. 인계된 이들은 강제 추방될 예정이다.


◆강제 추방 두려워 도망…저마다 사연으로 멀리 못 가



도망친 불법체류자들은 붙잡힌 뒤 진행된 조사에서 대체로 '강제 추방이 두려워 도망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작정 도망친 이들은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아나거나 지인의 도움을 얻어 광주와 전남·북 각지로 흩어졌다.

가깝게는 광주 광산구 비아동, 멀리는 전북 완주까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나 이들의 도주 행각은 멀리,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의 추적망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지인과 연락하며 상황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탈주에 따른 지역 사회의 반향과 자신들을 향한 자수 권유를 확인했다.

이들 중 일부는 수사 당국의에 쫓기는 신세로 더이상 지역에서 지낼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자수를 택했다.

또다른 일부는 영영 경찰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탓에 사회·경제적 기반이 갖춰진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도주한 베트남인 중 한 명은 광주에서 동거인과 아이를 갖고 생활해온 탓에 멀리 도망칠 수 없었다.

경찰은 이같은 심리를 이용, 이들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추적을 통해 붙잡았다.


◆ 경찰, 수갑 미사용·감시 소홀 '도마 위'

경찰은 이들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수갑 등 도주 방지책을 강구하지 않거나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먼저 경찰은 현행범 체포 당시 이들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수갑은 폭행·도주·극단적 선택 시도 등의 우려가 보이는 자들에게 채울 수 있으나 의무가 아니라는 점에 따라서다.

경찰청은 범죄수사규칙과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등을 통해 수갑 착용 여부를 안내하고 있다.

범죄수사규칙 제125조 4항은 '경찰관은 피의자가 도주, 자살 또는 폭행 등을 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갑·포승 등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있다.

유치인을 다루는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 제22조에도 수갑의 사용 범위를 출감·도주·극단적 선택·폭행 우려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들이 저항 없이 순순히 임의동행된 점 등에 따라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자 경찰의 감시 태도도 누그러졌다.

당시 지구대에는 직원 7명과 지원을 나온 기동대 5명이 투입돼 있었지만 감시를 전담하는 인력은 별도로 없었다. 이따금 직원 일부가 회의실과 조사 공간을 오가며 동태만 확인했을 뿐이다.

게다가 경찰 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폐쇄회로(CC)TV도 설치돼있지 않았다.

광산경찰은 지난해 7월에도 피의자 관리 소홀로 데이트 폭행 사범 30대 남성을 지구대 조사 도중 놓친 바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경찰서 바깥으로 나간 그는 동행한 경찰 1명의 추적을 피해 달아났다가 도주 7시간 만에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수갑 사용 여부는 현장 지휘자의 판단에 따라 달렸다. 조사 당시 현행범들이 순순히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취해오면서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곧 감찰에 나서 정확한 경위를 파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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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