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마루(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은 일본 군부가 저지른 고의적 자폭이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또 나왔다.
1일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김문길(부산외대 명예교수) 소장은 40여년간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연구했고 추모회도 30년여간 주관해 왔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22일 오후 10시 일본 아오모리(靑森) 오미나도(大港)를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 배는 일본 해군 사령부 앞 바다 마이즈루(舞鶴)항에서 폭발해 침몰했다.
일본은 출항 2시간 전 '대해령'(대해령 : 미연합군명령 일본 왕 문서)으로 출항 금지를 했다. 이 배 기관병(선원)들은 그대로 출항할 기미를 알고 전보까지 쳐서 출항치 말 것을 지시했다. 이 배에 탔던 기관병들은 부산항으로 가지 않았다. 기관병들은 마이즈루항 시위 문서, 배에 무기를 버리라 지시문이 내려도 폭발물을 싣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 언론은 이런 사실은 기관병들에게서 들었고 일본 비밀문서에서 찾아 보도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고철이 필요해지자(당시 군수 물자 무기 일본 생산) 오사카 인양회사 이노사루베시(飯野)가 인양했다.
아사히신문 1950년 2월10일자 보도를 보면 오사카 선단은 오키나와 항로에 사용된 우수한 배로 알려졌다. 태평양전쟁 후 우키시마호는 조선인을 싣고 오던 중 마이즈루항에서 기뢰에 침몰, 선체가 두 동강 났다. 당시 배를 인양해도 엔진 재사용은 불가하다고 여겼다. 총 3회 조사해 선체 상부는 두 개로 갈라져 있고 배 밑바닥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기관부도 생각보다 고장이 없었다. 위층 부분을 인양해 재사용키로 하고 원상 복원할 계획이었다.
즉 이노사루베시 회사 조사부가 조사 당시 엔진 부분 밑부분(밑창)은 원형대로 남아 있은 것으로 아사히 신문이 취재한 결과 밝혀졌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미연합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에 불가항력적으로 침몰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배에 싣고 온 폭발물로 인해 기뢰 폭발이 아닌 자폭했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드러난 셈이다.
미연합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에 폭발됐다면 배 밑부분부터 두 동강이 났으나 양호한 상태여서 선내 폭발이라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이 자료는 침몰 당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재일 교포 김찬정씨의 기록문이다. 당시 신문에 보도된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우키시마호는 '고의적 자폭'이란 일본 비밀문서가 수두룩하다"며 "며칠 전에 일본 총리가 내한 때까지고 온 우키시마호 희생자 명부는 하루속히 공개하고 보상할 것은 보상해야 미래 동반자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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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본부장 / 최갑룡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