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추행·희롱' 피해사례, 회사메일 공유
1·2심서 명예훼손 유죄…대법서 파기환송
대법 "모욕 없어…피해구제 도움주려는 것"
사내 성희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례를 회사에 공유한 행위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상대를 비방하려는 목적이 아닌,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피해를 구제하려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6년 SRS코리아(당시 KFC) 소속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KFC 전국 208개 매장의 대표 이메일과 본사 직원 80여명의 회사 개인 이메일로 '저는 B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내용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결과 A씨는 이메일에서 '사원들을 모아 마련한 자리에서 테이블 밑으로 손을 잡으며 성추행이 이뤄졌고, 문자로 추가 희롱이 있었다', '절차상 성희롱 고충상담 및 처리 담당자가 제게 성희롱을 했던 B씨이므로 불이익이 갈까 싶어 말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은 A씨가 사실을 적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가 문제 삼은) 행위는 당시 유부남인 B씨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더라도, 관심을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며 "성추행,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해도 A씨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메일을 보냈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메일을 보낸 것이지, B씨의 명예를 훼손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인정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라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또 명예훼손의 대상이 된 사람이 그러한 표현을 자초한 게 아닌지, 표현의 동기는 무엇인지 등을 따져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A씨가 보낸 이메일은 직장 내 성추행 및 성희롱 문제에 관한 것이며, 회사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해당해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아울러 "B씨가 술자리에서 부하직원과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며 "A씨에게 성희롱적인 내용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스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A씨는 이메일에서 B씨를 상대로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관련 규정을 공유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씨로서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 사례를 곧바로 알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 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면서 "A씨는 자신의 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이메일을 발송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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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