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 참석 김주애, 北 '여성 후계자' 세습 가능할까

北매체 '존경하는 자제분' 호칭에 백두혈통 강조
"가부장제지만 성별 후계구도 핵심 변수 아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군절(조선인민군 창건) 기념행사에 이어 열병식까지 등장하면서 후계자설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북한 사회를 고려해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지 않는 시각이 다수 나온다. 하지만 정해진 승계 원칙이 없는 북한의 후계 구도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 체제를 이끌 자질'이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관측도 제기한다.



9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김주애는 전날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석했다.

김주애는 이번 열병식에서도 특급 대우를 받았다. 검은색 모자와 코트 차림의 김주애는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레드카펫 위를 걸어 행사장에 들어왔다. 둘의 한 걸음 정도 뒤에 리설주가 함께했으며, 그 뒤로 간부들이 손뼉을 치며 따르는 모습이었다.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사랑하는 자제분과 리설주 여사와 함께 광장에 도착했다"고 보도함으로써 김주애를 그의 어머니 리설주보다 먼저 호명했다.

김주애는 이후 리설주 및 간부들과 함께 귀빈석에 앉아 열병식 행사를 관람했다. 조용원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앉는 주석단 뒤편 귀빈석에서 열병식을 지켜봤는데, 귀빈석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북한은 보도에서 조용원 조직비서와 리일환·김재룡·전현철 당 중앙위 비서들이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귀빈석이 자리잡았다"고도 전해 이번 보도에서 '사랑하는'과 '존경하는' 수식어를 모두 사용했다.

지난 7일 열린 건군절 기념연회의 주인공도 단연 김주애였다. 김주애는 헤드 테이블에서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사이에 앉았고, 할아버지뻘의 박수일 인민군 총참모장 등 군 장성들이 김주애 뒤로 병풍처럼 서 있었다. 김주애 역시 이러한 예우를 받는데 어색해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연신 당당한 모습이었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이번 열병식까지 5번째로 모두 군 관련 행사여서 주목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들어 딸 김주애를 잇따라 대외에 공개하고 북한 매체들도 이른바 '백두혈통 4대'인 김주애를 적극 띄우면서 후계자설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아직 10대인 김주애가 당장 후계자로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은 없지만 수십 년 후 중앙 지도부가 여성인 김주애를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찌감치 준비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동아시아협력센터장은 "민주주의국가인 한국의 시각에서 북한을 보면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매우 어렵겠지만, 북한에서는 모든 간부들로 하여금 수령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충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사실상 군주제 국가"라며 "간부들이 '충신'이 되면 최고지도자는 ‘왕’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왕의 자녀 중 하나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어도 만약 그가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처럼 성격이 여성적이고 정치와 군사보다 음악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를 후계자로 내세울 수는 없다"며 "김정일은 김정은의 '담력'과 '배짱'을 가장 높게 평가했는데, 김주애도 과거 김정은처럼 '담력'과 '배짱'이 있다면 김정은도 그를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북한에서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것은 이례적인 결정이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성별 문제가 북한 후계 구도의 핵심적인 변수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지난해 연말 '2023 한반도 연례정세전망' 간담회에서 "(후계의 기준은) 남성, 여성에 상관 없이 수령 체제를 가장 잘 끌고 갈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라며 "백두혈통 계승성이라는 측면에서 김주애가 후계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후계자가 꼭 남자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후계 논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수십 년이 남았는데 충분히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도 "김정은도 김정일의 세 아들 중 막내이면서 정권을 이어받았다"며 "북한의 지도부 대부분은 남성이지만 권력 핵심층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최선희 외무상 등 저명한 여성들이 있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50%로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아직 후계구도를 언급하는 것은 이르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김주애가 군 관련 행사에만 등장한 것은 국방력 강화를 통해 미래 세대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정부 역시 김주애의 '후계자설'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초 국회 정보위원회에 김 위원장이 '4대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주애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며 "김주애를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통일부는 "후계구도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