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 공판준비기일…출석 의무는 없어
'북송'에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서훈 '그냥 돌려보내면 안되나'…檢공소장
"귀순 의사 진정성 없었다 판단" 혐의 부인
이른바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고위급 인사들의 1심 재판 절차가 시작된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허경무·김정곤·김미경)는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 전 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이날 오후 2시 진행한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공판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이들의 법정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 전 실장 등은 탈북어민을 북한에 송환하게 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관계 공무원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탈북어민들이 대한민국 법령과 적법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체류해 재판 받을 권리 등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는 강제북송 방침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를 중단·조기 종결하도록 해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적용됐다.
검찰은 서 전 원장에게 허위공문서작성 및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 결과 보고서상 탈북어민들의 귀순 요청 사실을 삭제하고, 조사가 계속 중임에도 종결된 것처럼 기재하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한 후 통일부에 배포하도록 한 혐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서 전 원장은 북한 어민들을 나포하기 하루 전인 2019년 11월1일 "동료 선원을 다수 살해한 흉악범이 남하를 시도하고 있다"며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 법적 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대공수사국이 '북한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보고서를 3일 제출하자 서 전 원장은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11월2일 북한 어민들이 나포된 직후 중앙합동정보조사팀 조사에서 '동료선원 16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에 중앙합동정보조사팀장이 "정식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며 "사실 규명을 위해 강제수사가 필요하고, 사법기관 요청 시 합동조사팀이 정보를 지원하겠다"고 국정원에 보고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때 합동조사팀장은 '혈흔이 있을 것', '선박 자체가 증거가 된다'고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 전 원장은 11월4일 새벽 국정원 3차장에게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것이겠냐, 귀순의 진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 의견을 넣어서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조사했다.
또 서 전 원장 지시를 받은 3차장은 보고서 내용의 상당 부분을 'X자' 표시하며 "송환을 전제로 하는 보고서인데, 이걸 넣을 필요가 있습니까"라며 보고서 수정을 지시한 것으로 공소장에 나타난다. 이에 강제수사, 혈흔감정 같은 귀순을 전제로 한 단어들이 빠졌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11월4일 청와대 대책회의에 수정된 보고서가 제출됐고, 노 전 실장이 '남북한 간의 특수관계를 감안할 때 북송이 가능하다'며 강제 북송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11월5일에도 합동조사팀장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으로부터 "합동조사 조서에 귀순이라는 용어가 있으면 곤란합니다"란 말을 듣고 보고서를 수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합동정보조사팀이 매뉴얼에 따라 대공혐의점을 조사한 뒤 북송 또는 귀순자 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윗선의 강제북송 결정에 따라 조사 결과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봤다. 보고서상 '귀순의사 표명'이나 '귀순' 표현이 삭제되고 '나포' '월선'으로 대체돼 귀순의사가 없었던 것처럼 조작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조작이 이뤄진 이유로 '남북관계'를 들었다. 공소장에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하고자 노력을 기울이던 상황에서, 탈북어민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을 우려했다"며 "충분한 법률 검토나 NSC 논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탈북 어민을 강제북송하기로 결정했다"고 적시됐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정부가 이들을 강제로 북송한 사건이다.
사건 당시인 2019년 11월2일 어민들이 탑승한 선박이 우리 해군에 나포됐고 이틀 뒤인 11월4일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북송 방침이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어민 2명은 같은 달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됐다.
같은 해 11월 한 시민단체가 정 전 실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으나, 검찰은 2년 뒤인 2021년 11월 사건을 개시할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각하 판단을 내렸다. 이후 지난해 국정원 등의 고발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왔다.
정 전 실장 등은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북한 어민들)은 합동 신문 과정에서 우리 팀에 귀순의향서를 제출했으나 주무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이들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들을 대한민국 일원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이들에 대한 추방을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됐으나 기소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사건의 최종 책임자를 정 전 실장으로 판단해 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향후 조사 계획도 현재로선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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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