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날 "수업 따라가면 풀 수 있는 수능" 발언
교육계 "쉽게 내라는 의도…변별력 하락 가능성"
"쉬운 수능도 상대평가 경쟁 속 사교육 찾게 돼"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강도 높은 사교육 경감 대책을 지시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난이도 조절을 출발점으로 제시했지만, 변별력이 떨어져 실효성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16일 교육부와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교과과정(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과도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다루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초·중·고 학생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이다. 전년도(23조4000억원) 대비 2조5000억원(10.8%) 증가했다. 2007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풀 수 있는 수능'은 현행보다 쉽게 출제하라는 뜻이라는 의견이 많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요즘 고난도 문항이 문제가 되는 듯 보이니까 수능을 쉽게 출제하라는 강한 메시지"라며 "국어와 수학에서 변별력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수능 영어 영역이 2018학년도에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수능의 변별력은 주로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가려지고 있다. 영어가 절대평가인 상태에서 국어와 수학이 지금보다 쉬워지면 수능의 변별력 자체가 낮아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다만 수능을 쉽게 낸다고 해서 사교육비 지출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많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이 평이하면 조금만 틀려도 2·3등급으로 밀리기 때문에 더 고득점을 맞아야 한다는 부담이 중상위권에 번지게 된다"며 "수능 점수로 줄 세워 1등부터 뽑는 현실 아래서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사교육을 통해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역시 "학부모 입장에서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아무리 교과서에서 배운 것만 수능에 내도 상대평가로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한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쉬운 수능이 오히려 사교육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인 장지환 서울 배재고 교사는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이유는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함"이라며 "수능이 어려워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사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장 교사는 "평균을 올리기 위해서는 쉬운 문제를 많이 배치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최상위권을 변별하지 못할 것"이라며 "문·이과 통합형 수능 3년차를 지내며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난이도를 어느 정도 맞춰 놓은 상태인데 출제 난도를 또 조정하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 대표는 "(수능이 쉬워지면) 한 과목 실수로 인해 대학을 못 가는 '한 과목 수능'이 될 수도 있다"며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절박한 긴장감이 돌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교육과정에 충실하게 출제된 수능으로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신뢰를 얻으려면 교육부의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구 소장은 "내년 수능은 어떻게 될 것이고, 앞으로 수능은 이런 방향으로 변할 것이고, 대입 전형은 이런 방식으로 설계해서 사교육이 이제는 유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설계도를 정확하게 보여줘야 신뢰할 수가 있다"며 "말잔치로는 국민이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부총리는 전날 대통령실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고심 중이기 때문에 대통령 발언을 참고해 수능은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면 풀 수 있게 출제하겠다"며 "추가 내용은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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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