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문 6칸 중 닫힌 2칸 열러 가다 급류에 휩쓸려
비보 접한 주민들 "싹싹한 부녀회장…안타깝다" 전해
"부녀회장도 맡을 만큼 싹싹하고 솔선수범한 주민이었는데, 안타까워요."
전남 함평에서 폭우 속 수문을 열던 60대 수문 관리인이 숨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수리시설 감시원 A(68·여)씨는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7일 오후 함평군 엄다면에서 남편 B씨와 함께 집과 500여m떨어진 엄다천 수문으로 향했다.
비 소식을 접한 A씨는 당일 낮에도 배수문 6칸 중 4칸을 열어뒀지만 폭우로 물이 마을로 넘칠까 걱정이 앞섰다.
어둠 속 시간당 70㎜의 강한 비바람 속 몸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였지만 신경은 온통 수문에 쏠렸다.
곧 제방 끝까지 차오를 듯 넘실거리는 물을 본 A씨는 수문을 여는 스위치를 급하게 켰다. 임무를 끝낸 A씨는 귀가하려 했지만 수문에 걸려 있는 수초가 마음에 걸렸다. 수문 개폐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A씨는 "집에 가자"고 외치는 남편을 뒤로 하고 낫을 매단 대나무막대기로 어수선하게 걸린 풀을 끄집어냈다.
집으로 가던 남편은 혼자 두고온 아내가 걱정됐다. 차량에서 손전등을 꺼내들고 돌아와 보니 아내는 온데 간데 없었다.
A씨는 실종 신고 이틀 만인 이날 오전 10시 37분께 사고 장소와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B씨는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눈물만 흘렸다.
주민과 농어촌공사 직원은 A씨의 비보를 접하고 "밝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안타깝다"며 입을 모았다.
모두들 그를 싹싹한 부녀회장이자 성실한 수리시설 관리인으로 기억했다.
A씨는 면민의 날 행사가 열리면 직접 떡과 밥·반찬을 장만해 주민들과 나눴다.
그는 기존에 있던 수리시설 관리원이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두자, 지난해 5월부터 일을 대신 맡았다. 꼼꼼하고 성실한 덕에 영농철인 오는 9월까지 연장 근무를 하기로 돼 있었다.
A씨는 모를 심는 요즘 날마다 논에 물을 대는 기계를 작동하러 양수장을 찾았다. 특히 수문 관리원은 문 개폐를 두고 주민 요청·민원이 쇄도하는 자리지만 A씨는 아무리 바빠도 불편한 기색 없이 밝은 모습으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이장이 본 A씨의 마지막 모습도 주민 요청으로 양수기를 켜러 가던 모습이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29일 "주민과 의사소통이 잘 되고 성실한 분들 위주로 수리시설 감시원으로 위촉하고 있다"며 "평소 성실했던 A씨가 이런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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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무안 / 김중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