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갈등에 소모적 논쟁…'최저임금 결정방식' 개선 고개

110일간 15차 회의 거쳤지만…노사 모두가 '불만족'
전문가들 "공익위원들이 키 쥔 구조 안돼…개선해야"
현행 위원들 임기 사실상 끝나…정부, 개편 나설 듯

 내년도 최저임금이 2006년 이후 역대 최장 110일간의 논의 끝에 2.5% 인상된 9860원으로 결정됐다. 총 15번의 회의, 10번의 수정안 끝에 나온 결과지만 노사 대립이 극심한 탓에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심의가 끝난 직후 노사는 물론 공익위원과 정부 측도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면서 최저임금위원회 개편 논의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최임위에 따르면, 최임위는 지난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친 마라톤 심의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9620원에서 240원(2.5%) 오른 9860원으로 의결했다.

최임위는 최저임금을 심의 의결하는 기구다. 공익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매년 3월 말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에 관한 심의를 요청하면 90일간 본격적인 내년도 최저임금에 관한 논의와 의결 절차를 거친다. 이후 고용장관은 이의제기를 거친 뒤 8월 5일 최종 결정해 고시한다.

하지만 이는 명문화된 규정일 뿐이다.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최저임금 심의가 법정 기한을 지킨 사례는 단 9번뿐이다.

올해도 최임위는 법정 심의기한을 20일 넘겨 110일간 총 15번의 회의를 진행했다. 현행과 같은 적용연도(매년 1월1일~12월31일)가 시행된 2006년(2007년 적용) 이후 최장 기록이다.

그동안 최임위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각자 요구안을 주장하다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고 공익위원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한쪽이 반발해 퇴장하는 관행이 반복돼왔다.

올해는 이를 피하기 위해 최임위가 10차 수정안까지 받아 양측 요구안의 격차를 180원까지 줄였다. 그리고 합의가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 9920원이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합의에 반대했고, 결국 노사 최종 제출안으로 표결에 부쳐 사용자위원 안으로 결정됐다.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키를 쥔 '캐스팅보트'가 되는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됐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위원들은 투표 결과를 보지 않고 그대로 퇴장했다.

의결 직후 불만은 노사 모두에게 터져나왔다. 노동계가 주장한 가구 생계비는 올해도 여전히 반영되지 않았고, 경영계가 주장한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논의도 폭넓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양쪽 모두 각자의 주장만 반복하다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이 되풀이된 것이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19일 새벽 심의 의결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지난 2년간 잘못된 최저임금 결정 산식으로 물가 폭등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저임금노동자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심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임위가 공정하지도 자율적이지도 않고 독립성을 상실한 '들러리 위원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제도 취지를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20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전망한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최저임금 결정에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며 "공익위원은 최저임금의 취지에 맞는 수준 논의에 공익 역할보다 중재자로 자처하며 최저임금 논의를 방관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협상과정에서 현실적 수준을 감안한 노동자안과 마지못해 최소액 인상만을 거듭한 사용자안의 산술적 평균을 합리적 중재안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책임있게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공익위원이 책임은 회피하고 정부 가이드라인을 관철하기 위해 합의된 회의 일정과 방식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의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향후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이 시행될 수 있는 토대 마련과 함께, 그간 소모적 논쟁과 극심한 노사갈등을 촉발해온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의 제도 개선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가 되는 현행 제도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사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 자체는 정부가 하는 쪽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본다"며 "산식을 어느 정도 마련하되, 지역이나 업종 등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그게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유리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현재처럼 공익위원들이 키를 쥐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가면 노사가 서로 간 경쟁하게 되고, 공익위원이 굉장히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교수는 결정 시기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5월부터 시작해서 7월까지 논의 기간이 두세 달밖에 되지 않는다"며 "내년도 임금을 정하기에 시점 자체도 11월 정도는 돼야 그 다음해 경제상황 예측이 가능하다. 정부 예산 때문에 7월에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지만,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결정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최임위 27명 위원들은 내년 5월 중으로 모두 임기가 종료된다. 이 때문에 올 하반기가 제도 개편 논의의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식 고용장관도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988년 이후 최저임금도 대폭 올랐고, 경제사회 여건도 많이 변했는데 최저임금 수준 못지않게 결정 방식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논쟁 부분에 대해 한번쯤 사회적인 논의를 해봐야 할 때가 됐다"고 제도 개편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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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