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 시위로 윤 맞은 민주…손 내밀자 '노룩 악수'도

'처럼회' 김용민, 앉아서 악수하며 "이제 그만두셔야"
시정연설 고성·야유 없었지만 '신사협정' 취지 무색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찾은 국회 본회의장 안팎에서는 불만을 표출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잇달아 포착됐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본회의장 앞에서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장외 시위를 벌였고, 일부 강성 의원은 악수를 청한 윤 대통령에 "그만두시라"고 쏘아붙였다.

회의장 질서유지를 위해 국민의힘과 맺은 '신사협정'을 정면으로 깬 것은 아니지만 정쟁 유발을 막고 협치의 물꼬를 트겠다는 협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 대통령을 피켓 침묵 시위로 맞았다.

홍익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70여명은 시정연설 직전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과 주변 복도에서 '국정기조 전환', '민생경제 우선', '국민을 두려워하라'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별도의 모두발언이나 육성 항의가 없는 침묵시위 형식이었다.

그러나 20분 후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 앞을 지나가자 의원들 사이에서는 '여기 한번 보고 가세요' 등의 고성이 들렸다. 윤 대통령은 침묵시위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환담장으로 향했다. 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피케팅을 보며 웃자 민주당 의원들은 야유로 맞받았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한 순간에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됐다.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민주당 의원 10여명에 악수를 청했다. 민주당 의원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했지만, 일부 의원은 윤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거나, 악수를 거부했다.

친명 성향의 이형석 의원은 윤 대통령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쳐다보지 않다 마지못해 손을 잡았고, 이 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의원은 아예 윤 대통령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바라봤다. 윤 대통령은 천 의원을 두 차례 쳐다봤지만 악수하지 못 하고 지나갔다. 홍정민·이동주 의원은 앉은 채로 악수했다. 문정복 의원은 윤 대통령이 다가오자 아예 등을 돌렸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이 끝난 후에도 의원석을 돌며 여야 의원들과 악수했다.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앉아서 악수하며 윤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두셔야죠"라는 말을 건넸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시정연설 후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길래 이렇게 화답했다"며 "(윤 대통령이)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만두길 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앞서 김 의원은 시정연설을 앞둔 이날 오전에는 "시정연설도 교회 가서 하지 뭐 하러 국회에 오느냐"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1주기인 지난 29일 유족이 있는 추모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드린 것을 비꼰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연설에 나설 때 고성이나 야유는 없었다. 야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다.

이날 시정연설은 대통령 메시지 만큼이나 여야가 합의한 '신사협정'을 지키느냐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대통령 시정연설이 첫 시험대여서다.

앞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 및 상임위 회의장 내 정쟁성 손팻말(피켓) 금지, 국회 본회의장 연설 때 상대 당에 대한 고성·야유 금지에 합의했다.

민주당은 전날 의원총회에서 이러한 신사협정 내용을 보고했다. 본회의장 안 손팻말 시위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일부 친명계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밖에서라도 손팻말 시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총에서 의견이 엇갈리자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비공개 의총을 다시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장외 침묵 시위를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일 년에 한 차례 국회 방문하는 건데 국민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께 국민 목소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여당도 신사협정은 회의장 안의 질서유지에 한정한 것을 잘 알고 있다. 협정 약속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절제해서 국민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여야가 협치를 위해 맺은 신사협정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발끈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고성과 야유를 중단하자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과거의 구태로 되돌렸다"며 "로텐더홀에서 피켓을 들고 신사협정을 제 발로 걷어찼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