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합의 사실상 파기…북한 맞대응 수위는

북 정찰위성 발사 직후 우리 정부 효력 정지
남북합의 파기 전례 없어…북 공세 나설 듯
맞불 파기 선언, 무인기 도발 등 가능

북한이 21일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정부는 공언한 대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했다. 남북 간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9.19합의가 4년 만에 사실상 파기되면서 북한의 맞대응이 예상된다.



2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순방 중임에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9·19합의 효력 일부 정지 안건을 비준했다. 마지막 남은 건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다. 현재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통화 등 남북 연락채널이 끊겼기 때문에 정부가 통상 그래왔듯 언론을 통해 알리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1조3항 효력이 정지되고, 과거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MLD)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이 복원된다.

남북 간 체결된 합의가 공식 절차를 밟고 명시적으로 효력 정지 혹은 파기된 건 처음이다. 전체 파기는 애초에 국내법상(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 근거 조항이 없고, 핵심 조항이 효력을 잃었단 점에서 이제 9.19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고 받아들여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모든 국가 간 합의에서 수정보완을 할 수는 있어도 일방적으로 한쪽이 효력 정지하는 건 파기와 다름 없다"며 "대화 부재 속에 효력 정지를 하면 남북간에 서로 협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한은 남한의 일방적인 파기라고 몰아붙이면서 비난을 퍼붓고 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도 2020년 6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 등을 통해 9.19합의 파기를 위협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효력 정지에 나선 건 남측이란 점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줘야 한다"며 남한의 이행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도 9.19합의 파기를 선언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2018년 4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 파기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은 9.19합의의 근간으로, 9.19합의의 공식 명칭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다.

다만 김 위원장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직접 서명한 문서를 다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북한이 주창하는 '최고존엄의 무결성'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과 북측 노광철 인민무력부장이 서명한 9.19합의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합의 전 사태로 원상복구 한단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으로선 시범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 공동경비구역(JSA) 현장 근무 경비병 재무장화 등이 예상 가능하다.

휴전선 인근 지역까지 무인기를 접근하는 방식으로 위협할 수도 있다. 열병식에서 선보인 전략무인정찰기 '샛별-4형', 다목적공격형무인기 '샛별-9형'이 활용되는 시나리오도 전망 가능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3차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하면서 앞으로 수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할 계획도 밝혔다. 최근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신형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의 경우 시기가 문제일 뿐 이미 사실상 예고된 도발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9.19합의가 없을 때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파기의 후과를 치러보란 식으로 공세를 날카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며 "거기에 대해선 우리가 감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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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