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늦은밤 야간 업무 중 빗길 사고
상해 입어 2600여만원 비용 청구 발생
'부당이득' 주장에도 法 "제한사유 아냐"
야간 배달 업무 중 교통사고를 당한 가입자가 청구한 병원비를 '신호 위반'을 이유로 부당이득금으로 환수하려던 건강보험공단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신호 위반 탓에 사고 생겼더라도 당사자의 신분, 야간 빗길 운행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중대 과실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건강보험 가입자 A씨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해 11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2년 6월30일 늦은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A씨는 자정이 넘은 시간 경기 안양시 일대에 오토바이를 타고 야간 배달 업무 중이었다.
교차로를 지나던 A씨는 빗길에 시야가 가려지자 빨간불에도 정차하지 않고 직진했는데, 이로 인해 반대편에서 좌회전하던 차량과 접촉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중골 골절, 중족골 골절 등 상해를 입은 A씨는 그해 11월말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건강보험 가입에 따라 공단 측은 해당 병원에 요양급여비용 2677만여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공단은 A씨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탔다며 병원에 지급한 비용을 부당이득으로 징수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를 A씨에게 통보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신호 위반 등은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보험급여 지급 제한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A씨는 반발했다. 자신에게 교통사고를 일으킬 동기도 없고, 당시 우천으로 인한 기상을 감안하면 시야가 방해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했다. 학생 신분으로 학업과 업무를 병행하면서 과로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커 이를 중과실로 보기는 무리라고 주장했다.
법원 역시 A씨 측 주장을 받아들여 공단에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건강보험법 입법 목적과 제도 특성을 고려해 급여 제한사유 중 '중대 과실' 요건은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사고를 야기했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법상 '중대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보고 급여 제한사유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이어 "중대 과실은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라며 "원고가 신호를 준수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나 판단착오로 신호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음주나 과속을 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사정이 없는 상황에서 원고의 고의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 단정하기 어렵다"며 "결국 원고가 부당하게 보험급여를 받았다고 볼 수 없어 이 사건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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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