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국가예방접종 피해보상 제도 개선' 연구
위기경보 '심각' 시 사망위로금 등 지급 근거 제안
"피해보상 전문위, 위원 중 법률가 30% 유지해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속 진행된 국가 예방접종 피해 보상과 관련, 인과성이 확인되지 않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9일 질병관리청은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기문주 변호사 연구팀에게 의뢰한 정책연구용역 '국가예방접종 피해보상 제도 개선을 위한 기초연구' 최종보고서를 이날 프리즘(www.prism.go.kr)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질병청이 지난해 8월부터 코로나19 예방접종 이후 피해 보상 및 지원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수행해 오던 것이다. 연구팀은 국외 피해보상제도와 우리 대법원 판례 등을 검토해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연구팀 제안의 핵심은 현행 법률을 고쳐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pandemic) 상황에 대비한 지원 제도의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현재 코로나19 백신과 인과성 유무가 명확하지 않은 사례에 대해 피해보상 대신 사망위로금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를 법제화하자는 이야기다.
현재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 기준 중 인과성 여부 판단은 크게 5가지다. ▲①인과성이 명백한 경우 ▲②인과성에 개연성이 있는 경우 ▲③인과성에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④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⑤명확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다.
이 중 인과성이 있다고 여겨진 '①~③'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상을 하고 있으나 인과성 여부가 불분명한 '④' 상황에 대해선 지원 확대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현재 ④에 대해 '시간적 개연성이 있지만 백신과 이상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사망 시 위로금 1억원, 질병의 경우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한다.
만약 '시간적 개연성이 있지만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일 경우 지원금이 줄어든다. 현재 부검 후 사인불명 시 사망위로금 1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은 질병·장애 또는 사망이 백신과의 인과성이 인정된 경우에 국가가 보상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인과성이 불명확한 경우의 지원은 따로 정하지 않는다.
이에 연구팀은 감염병예방법을 고쳐 '인과성 인정 근거가 확인되지 않으나 관련 국내·외 연구기관의 통계적 분석 등을 통해 연관성이 확인되는 경우'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시간적 근접성이 인정되는 경우 등으로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도 지원금 지급 근거로 제안했다. 두 사례에 해당하는 경우 의료비나 사망위로금 등을 지급할 수 있고 지원 대상이나 범위·절차는 보건복지부령으로 따로 정하자고 조문을 제안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런 지원금은 감염병 위기경보가 최상위 '심각' 단계가 발령된 때에 한해 이뤄지는 국가 예방접종에 한해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런 방식이 현재의 국가 예방접종 피해보상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점, 질병청이 전문적 판단으로 합리적인 지원 규모를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 방안"이라고 풀이했다.
연구팀은 이처럼 현행 지원 제도를 그대로 입법화하는 방식 대신 기존 대법원 관련 판례를 입법화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판례는 개별 사건에 있어 하급심을 기속하는 판단 지침으로써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으로 볼 수 없고, 변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또 설령 판례를 따르더라도 사안마다 여러 요소를 종합 고려해 전문적 판단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처럼 감염병예방법이 개정될 경우 그간 백신 피해보상 여부를 판단하던 과학적, 의학적 판단 기준과 별도로 새로운 규범적 판단 기준이 마련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피해보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백신 접종과 인과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한 조사 기준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해선 예방접종 피해조사반이 인과성을 검토한다. 이는 접종으로 인한 질병·장애·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절차이므로 과학적·의학적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게 연구팀 판단이다.
다만 피해보상을 결정하는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의 인과성 판단은 원인규명이 목적이 아니라 피해보상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그 취지·목적이 다른 만큼 판단기준 역시 별도로 정립하자는 이야기다.
아울러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별도의 피해보상 판단기준 정립을 위해 피해보상 전문위의 법률가 비율을 상향할 필요가 있고, 피해조사반의 구성원 일부만 전문위의 위원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보상 전문위 위원은 총 14명으로 이 중 의대 교수가 10명으로 가장 많고 법의학자와 약품 전문가 각각 1명씩이다. 변호사는 2명이다.
연구팀은 "규범적 판단기준을 도입하는 이상 법률가들의 비율을 30% 정도는 유지해야 한다"며 "이처럼 구성한 후 전문위를 운영해가면서 법률가 비율을 합리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연구팀은 "피해조사반의 위원장과 전문위의 위원장을 동일한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피해조사반 구성원으로서 전문위 위원이 되는 구성원의 역할은 피해조사반의 판단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므로 2~3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본 연구 결과를 참고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국가예방접종 피해보상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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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