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된 60대 건축업자,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 법정최고형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오기두)은 7일 선고공판에서 사기,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업자 A(63)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115억5678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법원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명의수탁자 등 공범 9명에게는 징역 각 4~13년을 선고했다. 이들 공범이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다시 공동범행에 이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추징은 기각했다.
앞서 검찰도 지난달 17일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사기죄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공범들에게는 징역 각 7~10년을 구형했다.
이날 오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나이 어린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70대 노인 등과 같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대상을 상대로 범행했다"면서 "범행 동기와 수법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에 비춰 결과도 중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는 최후진술에서 피해자들에게 '정부나 LH에서 피해를 구제해 줄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며 "자신의 범죄 행위로 발생한 문제를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 줘야 한다는 태도로 전혀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 재범할 우려도 크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으로 임대차 거래에 관한 사회공동체의 신의가 처참하게 무너졌고, 청년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서 "주범인 A씨에게 현행법상 허용된 법정 최고형에 가중처벌까지 적용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오 부장판사는 또 지난 1일 A씨 측이 제출한 법관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
그는 "지난 10개월간 격주로 2차례씩, 8월 휴정기에 휴가도 반납한 채 총 51차례 공판을 진행하고 100명이 넘는 증인들을 신문했다"며 "변호인이 신청한 증거도 모두 채택했고, 반대신문 기회도 충분히 보장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피고인 측 변호인의 변론종결 이후 재개 신청, 합의부 이송 주장, 법관 기피신청 등은 소송 지연 목적임이 분명해 이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오 부장판사는 판결문 낭독 중 전세사기 범죄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사기죄 법정형은 최고형이 징역 10년이고, 경합범 가중을 해도 징역 15년에 그친다"면서 "법원은 그 이상의 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행 법률은 해당 사건처럼 다수 피해자의 주거생활 안정을 파괴하고 재산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피해 등을 예방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며 "입법자가 다수 국민, 대규모 침해 범죄에 대해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므로 처벌 등을 개정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선고 직후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반성은 커녕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하는 A씨 일당에게는 법정최고형도 모자란다"고 호소했다.
또 "A씨 등 공범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확대해 더 강력한 처벌을 내려 달라"거나, "범죄수익 몰수와 추징 등을 통해 피해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A씨 등은 지난 2022년 1월부터 같은해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자신이 소유한 공동주택의 임차인 19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14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2차 기소해 별건 재판 중인 사건까지 합하면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 사이 건축왕 일당의 전세사기 피해자는 563명, 피해 보증금은 약 453억원이다.
검찰은 또 A씨가 지난 2018년 1월 강원 동해 망상지구 도시개발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사의 공사대금 등 약 117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추가로 규명해 기소했다.
'건축왕' A씨는 지난 2009년부터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대부분의 토지를 매입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소규모 아파트, 빌라 등 주택을 직접 건축했다.
그는 부동산 개발 관련 대규모 대출(PF)과 준공 대출금으로 건축 비용을 충당하고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사업비용을 충당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2700여채에 달하는 주택을 보유했다.
하지만 A씨는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수입에만 의존해 대출이자,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 하던 중 결국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에 지난 2022년 1월부터 여러 주택의 경매가 개시됐지만 A씨가 고용한 공인중개사 등은 이 사정을 숨기고 전세계약을 체결해 전세보증금을 가로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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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김 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