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부정수급, 노무법인이 병원 소개 '브로커' 노릇까지

고용노동부, 산재보험제도 특정 감사결과 발표
총 486건 부정수급 사례 적발…제도 개선 시사
"노무법인, 법률사무소 11개소 처음 수사 의뢰"
근로복지공단, 부정수급근절·운영개선 TF 발족
양대노총 "전체 산재 중 0.3%…실체 입증 못해"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 특정감사를 통해 113억원대의 부정수급액을 적발하고, 노무법인이 이른바 '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과도한 수임료를 받아간 정황을 포착했다.

노동계는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고 반발한 가운데, 산재보험 운영 주체인 근로복지공단은 곧바로 '부정수급 근절 특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무기한 가동을 예고하는 등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부정수급액 113억 적발…'브로커' 역할 노무법인은 수사의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및 노무법인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명 '나이롱 환자' 등 산재 부정수급 문제가 제기되면서 같은 해 11월1일부터 12월29일까지 실시됐다.

고용부는 감사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 등 각종 신고 시스템 등을 통해 접수되거나 자체 인지한 883건을 조사해 이 중 486건(55%)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액은 약 113억2500만원이다.

이 장관은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서는 현재 부당이득 배액징수, 장해등급 재결정, 형사고발 등 조치 중에 있고 부정수급으로 의심된 4900여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부정수급자에 대한 형사고발 기준을 강화하고 전담부서를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감사에서는 일부 노무법인들이 '산재 브로커' 노릇을 한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난청을 앓던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의 난청 진단은 노무법인이 선택한 병원에서 이뤄졌는데, 자신들과 거래하는 병원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병원 이동 시 노무법인 차량으로 이동하고 진단비와 검사비 역시 노무법인에서 모두 지급했다. 이후 A씨가 소음성 난청 승인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약 4800만원을 지급 받자, 이 중 30%에 해당하는 1500만원을 수임료 명목으로 받아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해자 B씨 역시 관절염 진단을 노무법인이 추천한 병원에서 받았고, 재해보상금의 30%에 해당하는 700만원을 수임료로 받아갔다.

이 밖에도 근골, 난청 등 산재 상담과 신청을 변호사나 노무사가 아닌 사무소 직원이 전담하는 '사무장' 사례도 적발됐다.

근골, 난청 등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C씨는 산재 소송 과정에서 담당 변호사를 단 한 번 만나고 나머지는 모두 사무소 직원이 담당했다고 밝혔다.

D씨 역시 근골 및 난청 관련 상담과 산재 신청은 노무사 행세를 한 직원이 전담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아갔다고 진술했다.

이 장관은 "지금까지 파악한 위법 정황을 토대로 공인노무사 등 대리 업무 수행과정 전반을 조사하고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개소에 대해 처음으로 수사 의뢰했다"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징계, 노무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도 허점으로 악용 늘어"…근로복지공단, 특별 대책 시행

고용부는 이번 감사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견됨에 따라 산재 보상제도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업무상 인정 기준인 '질병 추정의 원칙'에 대한 법적 근거 미비 문제와 소음성 난청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소음성 난청의 경우, 신청자의 93%가 60대 이상 고령층이고 신청 건수 역시 2017년과 비교해 6.4배(2239건→1만4273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상급여액도 5.2배(347억원→1818억원) 늘어났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 장관은 산재보험 요양이 장기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전체 요양환자의 48%가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다. 그 원인으로는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의 부재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제도 이용 ▲저조한 집중재활치료 실적 ▲민간산재병원 관리 부적정 등을 꼽았다.

이 밖에도 그는 산재보험에 대한 기금 적립금 논의 필요와 재정 건정성 유지를 위한 보상 체계 변경 등 필요성도 제기했다.


산재보험 운영 주체인 근로복지공단은 곧바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 부정수급 근절을 위해 박종길 이사장이 직접 단장을 맡고, 7개 권역별 지역본부장이 팀장을 맡는 '부정수급 근절 특별 TF'를 구성해 무기한 가동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부정수급 사례가 많은 유형을 상병별, 지역별, 업종별로 분석·추출해 기획조사 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검찰, 고용부 등 관련 부처와 합동으로 불법 브로커와 사무장 병원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부정수급 신고 활성화를 위해 근로복지공단 대표전화를 통한 신고를 비롯해 지역 본부별로 신고센터를 확대 운영하고, 포상금 제도와 적발 사례 적극 홍보 등도 병행할 예정이다.

부정수급에 대한 처벌 및 배액 징수 등 불법·부당 수급액에 대한 환수를 강화하고 분기별로 추진실적과 주요 사례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와 동시에 '산재보험 운영 개선 TF'도 발족한다.

이는 고용부가 지난 1월부터 운영 중인 '산재보험 제도개선 TF'와 연계되는 활동이다. 산재보험 운영상의 공정성·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며, 객관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단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다. 단장은 박 이사장이 맡는다.

박 이사장은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와 사중손실을 동시에 해소하고 단순보상보다는 재활을 통해 직장복귀롤 이어지는 선순환 사회서비스로서의 산재보험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반발…"극히 일부 사례인데 카르텔로 몰아"

반면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당초 감사의 명분이 됐던 '산재 카르텔'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하기에는 부정수급과 불법 사례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부정수급 사례를 보면 지난해 산재 승인건수와 비교하더라도 0.3% 수준에 불과하며 보험급여 지출액 7조2849억원과 비춰봐도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며 "부정수급은 철저히 조사하고 걸러내는 것이 맞지만 과연 이 정도를 가지고 산재 카르텔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정부가 무책임하게 던진 언행들로 인해 그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산재환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극히 일부의 부정수급 사례를 가지고 산재환자 대부분을 실체 없는 카르텔로 몰면서 공정하게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들까지 부정 수급자로 취급 받는 등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매년 발생하고 처리해왔던 부정수급 문제를 일부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산재 노동자 전체를 모욕할 것이 아니라 부정수급 담당인력 확충과 능력 제고, 적발 시스템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산재 치료비조차 개인 부담이 있고 노동자들은 직업병에 대한 교육도 안내도 제대로 받지 못해 발생 추정 대비 직업병 신청률이 낮은데 실체도 없는 산재 카르텔로 산재 노동자 전체를 모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부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