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장갑차 깔려 숨진 권 일병 사건, 5·18조사위는 '규명 불능'

'시민군 장갑차에 깔려 숨져' 허위 사실 판결 불구
5·18조사위 판결보다 후퇴한 결론 내면서 도마 위

전두환 회고록 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에 다가섰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장갑차 압사 사건과 관련해 국가조사기관이 기존 결론보다 후퇴한 보고서를 내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계엄군이 시민군의 장갑차에 치어 숨져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집단 발포로 이어졌다는 전두환 측 주장이 법원 판결에 의해 허위 사실로 드러났지만,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지 않아 왜곡 여지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6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조사위는 지난 4일 오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작전에 참여한 군과 시위진압에 투입된 경찰의 사망·상해 등에 관한 피해'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5·18 당시 숨지거나 다친 군과 경찰의 규모, 부상과 사망 경위 등에 대한 기록과 진술 등이 담겼다.

내용 중 조사위가 1980년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11공수여단 소속 권 모 일병의 사건에 대해 '진상불능 결정'을 내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해당 사건은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대시민 집단 발포와 연계된 5·18 왜곡의 주요 뿌리 중 한 축이다. 그간 권 일병이 광주 시민들의 시위대가 몰던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는 신군부 측 주장과 계엄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는 진술이 뒤섞여온 탓이다. 신군부 측은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면서 자위권 발동과 대시민 집단 발포의 근거로 이용해왔다.

보고서는 '권 일병이 숨진 경위에 대해 일관적인 진술을 받아내지 못했고 신체검안서를 통해서도 정확한 사인을 특정할 수 없었으며 개인 피해 관련 기록 조사와 목격자 등 참고인에 대한 대인 조사를 추가적으로 진행하지 못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과거 광주고법이 해당 사건에 대해 신군부 측 주장을 허위 사실로 판결했음에도 이러한 내용이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광주고법은 지난 2022년 9월 14일 전두환이 회고록을 통해 5·18을 왜곡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5·18 당시 계엄군의 대시민 헬기 사격이 없었고 권 일병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어 숨졌다는 전두환 측 주장이 왜곡이라는 것이다.


판결문은 '(권 일병은) 시민들이 운전한 장갑차(도시형·차륜형·고무타이어 바퀴형)에 의해 들이받혀 사망(충격·충돌로 인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계엄군 장갑차(무한궤도형) 후진으로 무한궤도에 의해 깔려 사망(역과형 사망)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또 같은 대대 소속 이 모씨의 직접 목격 진술, 다른 장교 출신을 포함한 공수부대원들의 진술이 동일한 점을 토대로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상반되는 진술을 한 군 관계자들의 경우 진술 내용이 상호 모순되는 등 정황상 믿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보고서 내용에도 이같은 판결 내용이 담겼으나 실제 결론을 도출해내는 근거로서는 활용되지 않고 참고 수준에 그쳤다.

광주 지역 사회는 보고서 내용이 기계적인 중립에 치우쳤다며 또다른 왜곡 시도의 빌미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광주고법 판결 당시 원고측 변호를 맡았던 김정호 변호사는 "조사위는 위증의 선서를 바탕으로 한 증인들의 진술과 이를 통해 검증된 객관적인 판결문이 있음에도 해당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할 수 없다고 처리했다"며 "보고서에서 판결문을 의도적으로 축소 언급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렇게 보고서가 발간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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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본부장 / 최유란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