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개발협의회' 후신 '광주·전남발전협의회'
전두환 지시로 설립…5·18 희생자 묘 이장 계획 실행
조사위 "신군부, 관변단체 통해 유족 애도 권리 봉쇄"
전국 미술인들의 등용문 '무등미술대전'을 주관하고 장학 사업을 펼쳐온 광주 지역 민간 단체가 과거 전두환 신군부의 지시를 받아 5·18민주화운동 유족들을 와해하는 공작을 수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5·18 직후 신군부가 유족을 회유해 희생자들의 묘소를 이장, 추모 권리를 박탈했다는 내용은 널리 알려졌으나 이를 수행해온 단체에 대한 의혹과 실체는 국가 기관 조사를 통해 비로소 규명됐다.
10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국가권력 등에 의한 피해자에 대한 탄압 사건' 보고서가 공개됐다.
해당 보고서는 5·18 기간(1980년 5월 18일~5월 27일)을 포함해 제5공화국 정권까지 이어진 신군부 주도 5·18 희생자와 유가족·피해자 단체 탄압 사건을 다뤘다.
희생자 묘소 강제 이장, 피해자들의 수배·학사징계·해직, 강제징집과 녹화사건 등에 대한 전말 분석이 담긴 보고서는 전원위원회 의결을 마치고 '진상규명' 결정됐다.
특히 보고서는 신군부의 지시를 받아 5·18 유족들을 와해시켰다는 의혹을 받아온 광주 지역 민간 단체 '광주·전남발전협의회'(협의회)의 결성 배경과 행적 등을 정리했다.
조사 결과 협의회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 아래 수립된 광주 망월동 5·18 희생자 묘지 이전 계획에 따라 지난 1982년 12월 '㈔전남지역개발협의회' 이름으로 창립됐다.
지역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협의회는 '지역 개발'을 설립 취지로 삼고 출향 기업들로부터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면으로는 이렇게 모인 성금을 활용해 505보안대와 안기부 광주분실이 5·18 유족과 피해자를 대상으로 실행한 각종 공작을 대신 해왔다.
특히 주로 나선 분야는 희생자들의 묘지 이장을 통한 유족 와해 시도다.
앞서 전두환은 1982년 3월 5일 김창식 전 전남도지사를 만나 망월동에 조성된 5·18 희생자들의 묘소를 이전하라는 투의 지시를 내렸다. 망월동 희생자 묘지가 지역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처럼 왜곡해 유족과 피해자들을 광주 지역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 한 것이다.
이에 김 전 도지사가 이전 세부 계획을 작성해 4달 뒤인 7월 30일 노태우 당시 내무부 장관에게 보고, 해당 내용이 9월 15일 전두환에게 전달됐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묘지 이전 계획은 이듬해 1월부터 '비둘기 시행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505보안대의 주도 아래 실행됐다.
협의회는 묘지 이장 계획이 지역사회 실제 여론인 것처럼 조장하고 희생자 묘소 이장을 결정한 유족에게 위로금 1000만원과 이장비 등을 건네는 등 회유했다.
회유를 넘어선 강요도 있었다.
희생자 서 모씨의 가족은 조사위와의 면담에서 이장과 관련된 당국의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교사였던 서씨의 아버지는 이장을 반대했으나 교육 당국의 사표 제출 압박, 수사기관의 갑작스런 방문 등이 이어지며 어쩔 수 없이 이장했다고 진술했다.
조사위는 신군부와 협의회 관계자들로부터 이같은 내용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505보안부대장은 조사위 면담 과정에서 협의회 발족과 묘지 이전 공작, 출향 기업 대상 기금 모금 사업을 주도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협의회 사무차장과 총무 등도 유족들에게 이장비와 위로금을 지급한 내용을 인정했다.
이같은 공작을 통해 이장된 묘소는 1983년 3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26기에 달한다. 이장된 묘소는 훗날 국립5·18민주묘지가 조성되며 이곳으로 다시 이장됐다.
이후 협의회는 1989년 광주전남지역개발협의회, 1993년 광주전남21세기발전협의회를 거쳐 2003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뒤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미술인 등용문 '무등미술대전'을 1985년부터 개최, 이밖에 고급인재 중심 육성 장학 사업 등을 진행 중이다.
조사위는 당시 혹독했던 공안 통치 체제를 감안, 유족이 묘지 이장 과정에서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국가 권력이 관변단체를 앞세워 벌인 제5공화국 전반에 걸친 5·18 유족·희생자 탄압 과정의 후속 조사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조사위 관계자는 "신군부는 관변단체를 앞세워 유족의 '애도할 권리'를 봉쇄했다. 관변단체를 통한 5·18 정신 희석, 유족 분열·획책 시도는 협의회 사건 뿐만이 아닐 것"이라며 "협의회는 신군부를 따라 광주 지역 사회를 분열하는데 앞장섰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당시 출향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성금을 온전한 곳에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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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