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화되는 서울 세운지구 재개발…그 많은 인쇄업체들 어디로

서울연구원, 세운지구 산업 현황 분석
서울시 전체 인쇄업체의 59.1% 밀집
대규모 재개발 시 인쇄업 타격 불가피
연구원 "신수요 대응해 활성화 해야"

서울 중구 세운지구 재개발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곳에서 사업을 해온 인쇄업체 등이 일터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20일 공개한 '서울시 도심 거점 산업 구조 고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세운지구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1967년 10월 준공된 현대상가아파트를 시작으로 아세아상가, 대림, 청계, 삼풍, 풍전, 신성, 진양 등 상가 아파트와 호텔이 1968년 완공됐다.



2009년 현대상가가 철거돼 현재는 세운상가 가동,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8개 상가군이 있다.

세운지구는 남쪽으로는 충무로역, 북쪽으로는 종로3가역, 동서로 각각 을지로 3가와 을지로4가역이 있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 호텔과 소매점이 입점했고 가전제품, 전자부품 판매장과 수리점, 금속기계 제조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상공업 지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타 지역에 대형 백화점이 개관하고 대형 고급아파트들이 건립되면서 세운지구 상권과 주거 기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도시 제조업 쇠퇴와 1990년 전자 유통업체들의 용산전자상가 이전으로 인해 산업 기능이 약화됐다.


2000년대 후반 국제 금융 위기와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서울시 정책이 재생과 보존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세운지구는 동력을 잃었다.

기존 전기, 통신, 인쇄 등 제조업 사업체는 규모가 영세하고 종사자들이 고령화됐으며 상가 공간 활용이 제한돼 있다.

2015년 다시세운 프로젝트 등으로 기존 도심 제조업을 고도화하고 관련 인력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처럼 현대화에 사실상 실패하면서 세운지구 전체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다. 현재 세운지구에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97%에 달한다. 붕괴와 화재 등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 57%에 이른다. 이들 건축물 중 40% 이상이 소방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화재 시 소방차 진입에 필요한 폭 6m가 확보되지 않는 도로가 65%에 달한다.

서울 중구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지역 사업체 총매출 1위, 재정자립도 2위로 서울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탓에 세운지구의 낙후는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고 서울연구원은 꼬집었다.

결국 서울시는 대규모 재개발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2021년 서울시장으로 돌아온 오세훈 시장은 세운지구에서 대규모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PJ호텔, 인현(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상가군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선다.


공원 주변으로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대거 들어선다. 을지로 일대 도심공원 하부에는 1200석 규모 뮤지컬 전용극장이 생긴다.

대규모 재개발에 따라 세운지구 산업 생태계는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수천개 업체와 수만명의 종사자의 생계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세운지구에는 2020년 기준 8973개 사업체에 2만8498명 종사자가 있다.

사업체 수 기준으로 도매 및 상품 중개업이 28%, 인쇄 및 기록 매체 복제업이 27%,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업이 9%, 음식업 및 주점업이 5%, 전문 서비스업이 4%,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이 4%, 부동산업이 3% 순이다.

세운지구 북동쪽에는 도소매와 유통업체, 북동쪽에는 제조업체, 남쪽에는 인쇄업체들이 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서울시 업체의 절반 이상이 모여 있는 인쇄업이 타격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서울시 전체 인쇄 사업체의 59.1%가 세운지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세운지구 내 인쇄업 종사자는 4818명이고 사업체는 2425개다. 사업체당 평균 종사자는 2.0명, 사업주 평균 연령은 57세다.


인쇄 산업은 기획과 디자인, 편집, 출력, 인쇄, 후가공, 감리, 판매 등 8단계 공정을 거치는데 세운지구 안에서 공정 단계별로 별도 사업체들이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

인쇄업체들은 인근 기업과 관공서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한다. 고객 요구에 맞춰 다품종 소량생산과 신속 생산이 가능하다.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일부 사업체가 떠날 경우 지구 내에서 사업 영위가 어려워진다.

인쇄업체들 덕에 세운지구 내 펄프, 종이 및 종이 제품 제조업은 성장 중이다. 2017년에서 2021년 사이 종사자 수는 1.7%, 사업체 수는 2.7% 늘었다. 대부분의 업종이 감소 중인 상황에서 종이 제조가 증가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인쇄업의 도심 입지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연구원은 인쇄업을 살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들은 "디지털 인쇄, 3차원 인쇄 등 기술 고도화 기반을 구축하고 개인 출판, 소량 인쇄 특화 시장 등 신수요에 대응하며 이미지 자료 및 인쇄물 특허 등록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인쇄장인 선발, 기술지원단 운영을 포함한 전문 인력 양성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인쇄물 전시회를 개최하고 수출지원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인쇄산업 진흥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친환경 인쇄기술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서울시는 세운지구 재개발 과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업체나 아예 은퇴하는 종사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는 세운지구 안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자 하는 업자들에게는 공공건물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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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이병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