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64세까지 내라?…노사정, '정년연장' 두고 갈리는 셈법

정부, 국민연금 의무가입상한 59세→64세 상향 검토
직장가입자, 사업주가 50% 부담…정년연장 논의 불가피
노동계 "법정 정년연장" vs 경영계 "계속고용이 바람직"
퇴직연금 의무화도 시사…"中企에 정부 지원 확대 필요"

정부가 현재 59세까지인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만 60세인 법정 정년의 일괄적 상향인지, 아니면 정년 이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이어가는 방식인지를 두고 노사정 간 셈법이 엇갈려 사회적 합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8일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4일 국민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단계적으로 13%로 인상하고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었던 소득대체율은 42%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세대 간 형평성을 위해 20대 가입자는 매년 0.25%포인트(p), 30대는 0.33%p, 40대는 0.5%p, 50대는 1%p로 차등 상향할 예정이다. 2040년이 되면 모두 13%가 되지만, 인상 속도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의무가입 연령, 즉 국민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나이를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는 올해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들이 숙의를 거쳐 내놓은 두 가지 방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의견이기도 하다. 당시 두 가지 개혁안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에서 차이를 보였으나 의무가입 연령을 64세로 올리고 수급개시연령을 2033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일치된 결론을 냈다.

현행 제도 하에서도 본인이 원하면 64세까지 낼 수 있지만,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가입자의 경우 사업주가 절반을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64세로 의무가입 연령을 올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년연장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현재 노사정은 이 문제를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노사정의 견해차가 워낙 커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우선 노동계는 지난해부터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려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통일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는 나이는 63세인데, 2033년이 되면 65세로 연장된다. 하지만 고령자고용법이 정하는 정년은 60세. 지금도 법정정년과 수급개시연령 사이에 3년이 차이 나는데 9년 뒤에는 그 간극이 5년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정부의 연금개혁안 발표 직후 입장을 내고 "지금도 국민연급 수급시기까지 소득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년 연장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획일적 법정 정년연장에는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신 정년 이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계속고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올해 2월16일 열린 연금특위 공론화위 이해관계자 1차 공청회에서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업종과 사업장마다 상이한 상황을 고려해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임금체계 개편, 고용유연성 강화 등으로 재고용을 포함한 계속고용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법정 정년연장보다는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계속고용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정년에 대한 생각을 묻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서면질의에 "정년제는 대기업·공공기관 위주로 도입되고 있고, 청년층이 대기업·공공기관을 선호하는 점에서 정년연장은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청년층 일자리와의 관계를 고려하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전문가의 시각은 엇갈린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장(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은 4일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국회 정년연장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라며 "임시적인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보다는 지금 일하는 데서 좀 더 오래 일하는 게 노후소득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층의 고용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으나, 여러 연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세대 간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며 "직무나 숙련도의 차이가 있고 상호보완적인 '잡셰어링(Job sharing·직무분할로 한 사람의 일자리를 2명 이상의 시간제로 나누는 것)' 등의 해법도 가능하다"고 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의 수혜자가 되는 사람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공공기관 등 일부"라며 "고령자 계속고용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현재의 형태로 정년연장이 되면 지속적으로 임금이 쌓여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생산성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정년연장 의무화는 대기업 등 특정 기업 근로자들에게만 이익이 되고 중소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도 단계화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고용부에 따르면, 퇴직연금제도는 2005년 도입됐으나 대기업 및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 간의 도입률 차이가 크다. 2022년 말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과 가입률은 각각 91.9%, 70.5%이었다. 반면 30인 미만 사업장은 각각 23.7%, 33.5%에 그쳤다.

고용부는 5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대·중소 사업장 도입률 및 근로자 가입률 격차와 영세 사업장의 낮은 도입률·가입률로 퇴직연금 도입이 장기간 낮은 수준에서 정체상태"라며 "퇴직연금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미도입 사업장 근로자 575만명의 임금체불을 예방함으로써 근로자 수급권을 보호하고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고용부는 영세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을 독려하기 위해 산하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을 운영 중이다. 30인 이하 사업장만 도입 가능한 제도로, 사업주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월 평균 급여가 최저임금의 130%(268만원) 미만에 해당할 경우, 사업주가 납입하는 부담금의 10%를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각각 3년씩 지원한다.

아직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확대보다는 정부 지원 확대와 중소기업 단체들과의 협업을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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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조봉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