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우미 이어 버스기사…서울시·고용부 '외국인 동상이몽'

서울시, 지난달 국조실에 E-9 운송업 허가 건의
고용부는 난색…김문수 "매우 신중하게 검토 중"
필리핀 가사도우미 때도 최저임금 두고 입장 갈려
외국인력 필요하지만…저숙련 내국인 일자리 감소
저출생 고령화로 현장 수요↑…"부처 연계 높여야"

서울시가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에 이어 마을버스 기사에까지 외국인 채용을 넓힐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제도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

25일 서울시와 고용부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국무조정실에 운수업을 '고용허가제(E-9)' 대상으로 넣어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서울시가 외국인력 도입 확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구인난' 때문이다. 서울시 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마을버스 기사 부족인원은 600명이다. 적정인원(3517명)의 17.1%에 달한다.

이들 조합은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2020년 코로나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낮은 임금수준 등으로 인해 시내버스 또는 배달직종 등으로 이직하고 있고 젊은이들이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진입이 안 되고 있다"며 "배차간격 확대로 인해 교통취약지역의 이용승객들 불편으로 이어져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당장 임금수준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현재 마을버스 업계 재정 여건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마을버스의 외국인근로자 확대 고용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당 사안이 보도되자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올해 9월 정식 배치돼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에서 임금체불과 통금 등 각종 논란이 일어난 데다, 2명이 무단이탈로 강제출국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외국인력 도입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는 여론도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 역시 신중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 17일 "시내버스 운송업에 대한 E-9 외국인력 도입은 아직 검토된 바 없다"며 "시내버스 운송업에 요구되는 자격과 기술, 업무 성격 등을 감안해 E-9 허용 적합성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도 19일 YTN '뉴스퀘어 2PM'에 출연해 "마을버스 운전기사라고 하는 것은 도로교통법도 있고, 승객을 모셔야 하고, 교통사고 위험도 있고, 탑승객들이 언어도 알아들어야 한다"며 "저희 부에서도 검토는 하고 있지만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려되는 부분을 강조한 것으로, 단기간 내 도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고용부, '필리핀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두고도 이견

서울시와 고용부의 외국인력 도입에 대한 엇박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9월 정식으로 배치돼 일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 계획 당시에도 서울시와 고용부는 이견을 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초 홍콩과 싱가포르 모델을 제시하며 '월 100만원'을 주장했으나, 고용부는 최저임금 준수에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 비준국으로, 차별금지 협약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 간 동일 수준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 입국해 일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최저임금을 보장 받으며 주 근로시간은 법에 따라 52시간 초과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김 장관은 9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임금을 500만원 받아 200만원 이상 (가사도우미) 비용으로 주고 나면 아이를 키울 수 있겠냐는 문제가 있고 가정에서 부담이 크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100만원 이하로 낮추자는 것은 쉽지 않다. 고용부가 검토한 결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등 정부가 합동으로 지난 6월 발표한 '외국인 가사사용인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가사사용인은 각 가정에서 1대 1로 고용하는 형태라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시범사업으로 들어와 있는 필리핀 가사도우미와 달리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올 때는 100만원에 올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뒤에 과연 거기서 계속 근무를 할지, 사라져버릴지 알 수 없다"면서 "월 238만원을 줘도 임금이 적다, 체불이다 말이 많은데 100만원을 준다고 하면 지금보다 몇 배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싱가포르처럼 이를 통제할 행정이 되느냐 그 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내국인 일자리 뺏을까 우려도…"정부, 외국인력 통합 관리 필요"

이와 함께 외국인력 확대가 자칫 내국인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비전문 취업비자인 E-9 도입 규모를 늘리고 있다. 연간 5만6000명 내외였던 도입 규모는 2022년 6만9000명에서 지난해 12만명으로 대폭 늘었고, 올해는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최대인 16만5000명으로 확대됐다.

고용허가제 인력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임업, 광업, 서비스업 등 일부 업종에만 고용이 가능하다. 주로 내국인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저숙련 일자리들이다.

하지만 필리핀 가사도우미에 이어 운송업까지 가능 업종이 늘어날 조짐이 보이면서 근로자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18일 성명을 내고 "마을버스 기사들의 인력 수급이 힘든 진짜 이유는 박봉과 격무 때문"이라며 "우선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급여 등 처우를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저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사용하기 전에 자국 노동자의 일자리 보호를 먼저 생각한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했다가 내국인 노동자의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결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발표한 '외국인 및 이민자 유입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이민자 유입이 내국인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미미했다.

다만 고졸 미만, 건설업, 기능직 등 저숙련 분야에서는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내국인 일자리 감소가 관측됐다. 지역 내 이민자가 1명 늘면 고졸 미만 내국인 일자리는 약 0.26개 감소한 것이다.

또 고용허가제 인력에 한정해서 봤을 때 이들이 유입된 지역에서 중숙련 내국인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산업현장의 외국인력 수요가 점점 높아지는 만큼 통합적으로 외국인력 정책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외국인력정책 총괄은 국무조정실이 맡고 있으며, 출입국과 관련해서는 법무부가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 고용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이 실무를 각각 담당해 사실상 부처 간 연계가 잘 되지는 않는 상황이다.

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이민청 설립을 적극 주도하기도 했으나, 제22대 국회 들어 관련 논의는 전무한 상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민청 설립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외국인 고용과 관련한 부처 간의 연계 협업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외국인력 도입은 1, 2년 단발적으로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부처 간 연계를 통해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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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