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효자 막둥이마저 떠나면 어찌 산단 말이오"

'이태원 참사' 광주 출신 변호사도 희생…유족 "믿기지 않아"
"먼저 떠난 쌍둥이 형 몫까지 효도…안부전화 거른 적 없어"

"빠지는 구석 없이 반듯하게 자란 효자를 잃고 나는 어찌 산단 말이오."



31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 A(43)씨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은 유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뜻밖의 비보를 접한 유족들은 황망한 표정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을 졸지에 잃은 어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해야겠소" "세상에 이런 일도 있소" 라며 한탄했다.

금융 공기업에 근무하는 변호사였던 A씨는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효자였다. 고등학생 시절 투병 생활을 하다 먼저 세상을 뜬 쌍둥이 형 몫까지 효도를 다했던 아들이었다고 어머니는 회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씨는 한 차례 이름을 바꿨고 그 이후엔 로스쿨에 진학하는 등 별 탈 없이 살 것이라고 가족들은 믿었다.

취업 이후 타향 살이를 한 A씨는 늘 부모님 건강을 염려하며 매주 일요일 오후 9시면 꼬박꼬박 안부 전화를 드렸다.

사고 당일이던 지난 토요일 오후 8시 6분 무렵 A씨 어머니는 알 수 없는 불길한 마음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차례 연락을 안 받았던 아들은 20분 뒤 곧바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의 건강 등을 살폈다.

A씨 어머니는 "나는 다른 건 하나도 중요치 않다. 네가 건강하고 제때 식사를 꼭 챙겨 먹었으면 한다"며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장성한 아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됐다.

A씨 부모는 언론 보도로 참사 소식을 접했지만 아들이 그 곳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이후 이태원에서 참변이 벌어진 다음 날 정오 무렵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아들의 참사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전화 금융 사기'인 줄로만 알고 재차 "우리 아들이 거기 갔을 리 없다"고 따져 물었다고 했다.

A씨 어머니는 "쌍둥이 형을 대신해 효도를 다 한 아들이었다. 생전 공부에만 매달렸고 반듯하게 자라 놀 줄도 모르는 아들이었다"며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이렇게 또 다시 자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 "로스쿨 졸업할 때까지 부모로서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줬다. 변변한 학원 한 번 보낸 적 없이 홀로 공부해 이제야 자리 잡고 잘 사나 했다"며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 뿐이다"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인파가 좁은 골목에 모이는 데 구청, 경찰 공무원들 하나 없었느냐"며 사고 책임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A씨 어머니는 조문 온 아들의 동료 변호사들의 손을 잡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A씨 아버지도 "우리 아들이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는지 도통 알 수 없다"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아내가 잘 버틸 수 있을 지 큰 걱정이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엉키면서 154명이 숨지고 149명이 다쳤다. 사고 당시 이태원에는 야외 마스크 해제 뒤 맞는 첫 핼러윈을 앞두고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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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영광 / 나권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