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까지 '무상돌봄'에…시민들 "근무 환경 개선이 더 절실"

유치원 온종일 돌봄교실, 오후 5시~10시 운영…석식 제공
시민·교사·전문가 "육아 시간 보장이 근본적인 해결책"

서울 지역 거점유치원 12곳이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위해 오후 10시까지 돌봄을 제공하기로 한 가운데 맞벌이 부부 등은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에 반가워하면서도, 노동 현실 개선이 절실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14일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오는 3월2일부터 내년 2월까지 서울 시내 12곳 유치원에서 저녁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유치원 온종일돌봄교실'이 도입된다.



어린이집·유치원에 재원 중인 3~5세 유아를 둔 학부모는 누구나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저녁 식사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또 현 소속 기관에서 거점유치원으로 이동할 때는 거점 버스 이용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맞벌이·한부모 가정 등은 자녀 돌봄을 위해 해당 서비스를 환영하면서도, 육아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만 4세 아이를 둔 한부모 가정 유모(35)씨는 "통상 6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7시30분인데 일이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거나 야근을 하면 9시가 되어야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며 "돌봄이 늦게까지 되는 데다 저녁까지 주는 유치원이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고 반겼다.

그러면서도 "야근 자체가 줄고 육아 휴직 등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제조업 근로자 박모(43)씨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상황을 대비해서 이렇게 대안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예기치 못한 야근이나 잔업이 줄어들고 근로 시간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러한 정책에 앞서 근로 시간을 줄여 육아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네티즌들은 "애들을 맡길 곳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육아시간을 보장해서 부모랑 같이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들의 근로 시간을 합법적으로 눈치 안 보고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육아 정책 이전에 근로 정책을 먼저 손봐야 할 듯싶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선의 유치원 교사들도 노동 문화 개선 없이 돌봄 서비스만을 늘리는 것은 유아 교육에 악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한다.

12년 차 유치원 교사 임모(35)씨는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씩 먼저 떠나면 남겨진 아이들이 부러워하기 시작한다"며 "현장에서 놀이 지도 등을 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집중을 못 하고 우울해한다"고 말했다.

16년 차 유치원 교사인 조모(39)씨도 "아이들이 10시까지 맡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육아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정책을 두고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안이 선행되지 않다 보니, 정부가 보육 서비스를 확대한 것이다"며 "보육시설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안 되니까 점점 보육 서비스의 시간을 늘리고 아침 저녁밥까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돌봄 서비스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녀 근로자 모두 장시간 노동하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정부 재정만 늘릴 뿐이다"며 "노동하는 시간을 전반적으로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돌봄과 육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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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