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 하에 공권력 조직적 투입…특허 포기 강요
"1970년대 기업 고충 처리 위해 불법 연행 및 구금도"
'5·16 민간인 총상' '미군정 포고 위반' 사건 진실규명도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1970년대 기업의 고충 처리를 위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주도 하에 공권력이 개입해 개인의 염색기술 특허권 포기를 강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제52차 위원회를 열고 '중앙정보부 소취하 강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 사건은 1972년 중앙정보부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국가기관이 개입해 직물 특수염색 기법인 일명 '홀치기' 발명자 고(故) 신모씨의 특허권 관련 소 취하를 강요해 재산권을 탈취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 지시 이후 상공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고 신씨를 불법 연행 및 구금한 뒤 특허권 포기 각서와 소 취하를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1972년 5월30일 '제5차 수출 진흥 확대 회의' 관련 중앙정보부 문건에는 상공부 장관이 "홀치기 특허의 부당성을 들어 특허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제기된 문제를 아직까지 시정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책했다고 기록돼 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수출 증대를 지상목표로 한 대통령과 상공부, 중앙정보부 등이 기업의 고충 처리라는 명목으로 불법체포, 폭력과 위협, 권리 포기 및 소취하 강요 등 불법적인 수단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씨의 특허권 포기 및 소 취하 이후에도 공권력에 의한 피해는 지속됐다. 신씨는 1972년 허위공문서 작성죄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상공부 특허 담당 공무원들은 비위자로 몰려 직위해제 당했으며, 신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는 다음 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대상자인 신씨의 자기결정권과 인격권, 신체의 자유, 재산권 등 인권이 중대히 침해됐으며, 사적 자치의 원칙과 사법권의 독립도 훼손당했다고 결론 내렸다. 사적 자치의 원칙이란 누구든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서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민법의 기본 이념이다.
진실화해위는 "수사 권한이 없는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불법체포, 불법수사를 하고 강요 행위를 한 정황이 드러났으므로 국가는 재심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5·16 군사정변 중 민간인 총상 사건'에 대해서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1961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 인근 다방에서 근무하던 조모씨가 총소리를 듣고 놀라 거리로 나왔다가, 5·16 군사정변 세력 군인들에게 저항 세력으로 오해받아 총상을 입게 된 사건이다.
조씨는 총격으로 장애 4급 판정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으나,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5·16 당시 군사정변에 가담한 해병대와 공수단은 남산 소재 중앙방송국을 점령하고 있었고, 총소리에 놀라 달아나던 조씨를 저항 세력으로 오인해 사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민간인이던 피해자가 어떠한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군인으로부터 총상을 입었다"며 "이는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미군정 포고 제2호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고(故) 심모씨가 194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후 1950년 국가보안법 및 미군정 포고 제2호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미군정 포고 제2호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청이 발표한 포고령이다. 여기에는 태평양미국육군 최고 지휘관의 포고,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등을 점령군군율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사형 등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9워27일 일반사면령을 통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미군정 포고 제2호를 위반한 자는 사면하도록 조치했다.
진실화해위는 "고 심씨에게 적용된 미군정 포고 제2호 위반의 경우 대한민국 정부의 일반사면령에 따라 사면됐으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돼 위헌이자 무효"라면서 "그럼에도 당시 법원이 미군정 포고 제2호 위반을 적용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은 고 심씨의 적법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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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종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