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3차 고분 조사 때 심각한 도굴 피해 목도 후 울분
나주 민초들 '반남마한유적보존회' 결성 마한사 유적 수호활동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꽃을 피운 2000년전 고대 왕국 마한사 복원과 연구 거점이 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경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0일 전남도 등에 따르면 센터 유치에는 광주광역시(서구 2곳·북구 1곳)와 전남도(나주·영암·해남), 전북도(익산·완주·고창), 충남도(아산)가 뛰어들었다.
문화재청에선 이번 주 중 후보지별 현장 실사를 마무리 짓고 센터 건립지를 최종 낙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앞서 센터 유치에 뛰어든 각 지역에선 유치 추진위원회 발족을 시작으로 시민 결의대회 등을 통해 센터 유치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영산강 유역 마한 역사의 중심지로 평가받는 나주시도 지난 4일 센터 유치추진위원회 발대식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나주시는 센터 유치의 당위성으로 국내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먼저 활발하게 전개해왔던 마한사 복원 노력과 성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마한사 재인식의 출발점이 된 1917년 반남 신촌리 9호분 금동관(국보 제295호)이 출토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100여년 넘게 마한사 복원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고, 타 지역과 차별화된 역사성·상징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한사 복원 100년 역사의 중심에는 일제강점기 최초 고분 발굴에 동원됐던 나주지역 민초들의 울분과 아픔이 있었다.
나주인들은 금동관 출토 이후 마한의 후손임을 자처하며 지난 100년간 잊혀지고 소멸될 뻔했던 마한 역사의 보존과 실체 규명에 부단히 힘써왔다. 그러한 노력은 후세에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승돼오고 있다.
나주 반남고분군 발굴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 조사원 야스이 세이이쓰(谷井濟一) 주도로 이뤄졌다.
인부로 강제 동원된 반남면들을 재촉한 결과 신촌리 9호분에선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1970년대 이뤄진 공주 무령왕릉이나 경주 금관총 발굴보다 50여년이 앞선다.
당시 한반도 내에서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보관(寶冠·왕관을 지칭)이 나주 반남에서 최초로 발굴된 것은 학계와 시민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고구려나 신라유적일리도 없고 백제의 중심지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나주 반남에서 어떻게 고대사회 최상위 지배자의 장식 위세품이 다량으로 묻혀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촉발된 마한 논쟁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횃불처럼 10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타올랐다. 나주 반남고분군이 마한사 재인식의 출발점이자 가장 상징적인 유적이 된 이유다.
반남면민들은 일제강점기에 총 3차례(1917~1918년·1939년)에 걸쳐 이뤄진 고분 발굴 과정에 동원됐다.
1939년 3차 조사 때엔 심각한 도굴 피해가 있었지만 반남면민들은 식민지 치하에서 유구한 역사의 현장이 훼손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애만 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에 울분을 토했던 반남면민들은 광복 이후 마을의 유적을 지키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반남면지에 따르면 유적 보존과 수호에 대한 열망은 1976년 주민 김일석씨의 주도 아래 40여명의 지역 유지들과의 논의에서 촉발됐다.
이듬해인 1977년 4월 15일 정제갑, 정승원씨의 주도로 반남면 대안리 13기, 신촌리 8기, 덕산리 14기에 대한 고분조사가 이뤄졌다.
같은해 지역 유지들과 이장단, 기관장, 청년회 등 80여명이 면사무소에 모여 '반남고분군유적보존회'를 발족하고 마한 유적 수호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중 정승원씨는 1984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의 발상지를 소개하는 반남 고분군 안내 책자 3000부를 발간·배포했다.
정씨는 일제강점기 이후 방치된 마한 유적 관련 최초 보고서인 '반남고분군종합조사보고서' 발간 조사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보존회를 비롯한 반남면민들은 1986년 자미대축제를 개최한데 이어 1988년 나주시민회관에서 마한 관련 강연회와 고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보존회는 '나주반남마한유적보존회'(이사장 정홍채)를 명칭으로 지난 2021년 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마한사 복원·정비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해오고 있다.
정홍채 이사장은 이번 센터 유치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정 이사장은 "나주인들은 어느 누구도, 어떤 지역에서도 마한에 관심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시민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지난 반세기동안 마한사 복원에 앞장서왔다"며 "마한 유적 보존과 마한사 실체 규명에 힘써온 선조들의 유지를 이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나주에 유치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보존회와 더불어 나주지역에는 마한사 복원과 재조명을 위한 여러 단체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4년 창립된 ㈔국립나주박물관후원회는 매년 마한문화아카데미 강좌 개최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마한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다.
이외에도 '마한포럼'(2017년 창립), '나주학회'(2020년 창립), '마한문화연구동아리', '마한독서아카데미' 등 크고 작은 단체들이 마한 역사 공부와 토의.강좌 등을 통해 마한사 재정립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경중 마한포럼 대표는 "마한의 후손인 나주인들은 마한 유산을 지키고 알리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마한 역사의 중심지이자 시민 활동의 중심지인 나주에 둥지를 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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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