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내 남편"…5·18 유족의 한 맺힌 43년

5·18 하루 앞둔 17일, 숨진 가족 찾아온 유족들
"미래 세대, 숨진 넋 잊지 않는 것이 여생 소원"

"숨진 우리 가족들 잊지 말아주소"

5·18민주화운동 43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숨진 가족들을 찾는 '5·18 어매'들의 고요한 흐느낌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43년 전 숨진 아들과 딸, 남편을 기리는 추모식을 거행하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하얀 소복 적삼 옷소매로 겨우 닦아냈다.

고(故) 권호영 열사의 어머니 이근례(83) 여사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남은 권 열사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어루만졌다.

권 열사는 1980년 5월 26일 남동생을 찾으러 외출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여수에서 지내던 권 열사와 가족들은 권 열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9년부터 광주 계림동에 정착했다.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미뤄온 권 열사는 장남으로서 동생 4명의 뒷바라지를 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초 학원가 내 정권 타도 시위 움직임이 격해지며 학원을 쉬어온 권 열사는 계엄군의 금남로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둘째 동생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를 찾는 가족을 보태기 위해 5월 26일 바깥으로 나선 권 열사는 금남로에서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됐다가 영영 사라졌다.

이 여사 등 가족들은 그해 8월 가까스로 둘째를 찾았으나, 권 열사는 5·18 22년 만인 2002년에서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내 무명열사 묘소에서 백골의 모습으로 어머니와 재회했다.

이 여사는 "43년 세월을 보내며 눈물이 마를 줄 알았지만 매년 5월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흐르더라"며 "후대들이 아들을 잊지 않는 것만이 남은 여생 동안 바라는 것"이라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같은 시간 고 임수춘 열사의 아내 윤삼례(81) 여사도 남편의 묘소를 찾았다.

윤 여사는 정성스레 깎아온 사과를 제단에 바친 뒤 말 없이 소주병을 따 묘소 곳곳에 부었다.

숨진 남편을 향해 '신랑'이라고 다정히 부르던 윤 여사는 차오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임 열사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에 휘말려 희생된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5월 21일 동구 학동에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던 임 열사는 바깥에 주차된 오토바이를 안으로 들여놓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간 순간 계엄군의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진 임 열사는 이튿날 숨졌다.

임 열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세 아들을 키우는 몫은 윤 여사에게 돌아갔다. 윤 여사는 가세가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허드렛일도 서슴치 않으며 43년 세월을 보냈다.

원망과 분노를 떠나보낸 윤 여사에게 남은 것은 남편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뿐이다.

윤 여사는 "장성한 아들들을 보고 있으면 먼저 떠난 남편이 눈에 선하다. 매년 5월마다 스스로 다독이고 가슴을 두드리며 설움을 풀고 있다"며 "묻어둔 그리운 마음 모두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될 날 고스란히 챙겨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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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