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간부 분향소·금속노련 투쟁서 경찰 충돌 발단
노사정 간담회 무산…한국노총, 7일 경사노위 탈퇴 논의
탈퇴 시 파장 불가피, '보이콧' 관측도…최임위 개최 주목
윤석열 정부 들어 악화일로를 걸어온 정부와 노동계 관계가 갈수록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건설노조 간부 분신 사망으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강경 투쟁에 돌입한 데 이어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까지 대정부 투쟁에 가세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과 달리 그나마 정부와 대화의 끈을 이어온 한국노총마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탈퇴를 검토하기로 하면서 노정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양대노총의 투쟁이 증폭된 발단은 지난달 3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분향소 설치와 한국노총 금속노련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과의 잇단 충돌이다.
당시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에선 우려했던 것과 달리 별다른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인근에서 건설노조 간부 추모 문화제를 준비하던 조합원들이 분향소를 설치하면서 경찰과 거친 고성과 몸싸움이 오갔다. 경찰은 "서울시가 허용하지 않은 불법 시설물"이라며 분향소를 강제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4명이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연행됐으며, 다른 조합원 3명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같은 날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수차례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강제 연행됐다.
이에 앞서 전날에는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김 사무처장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려던 경찰을 막아서다 경찰 무릎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가 눌린 채 '뒷수갑'이 채워져 연행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경찰을 강력 규탄했다.
이들은 "연이어 자행된 윤석열 정권의 폭력 연행과 진압을 보며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와 대화할 생각도, 의지도 없음을 분명히 확인했다"며 "이 시간 이후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간 한국노총은 노정 관계 악화에도 '정부와 사회적 대화는 이어간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산하 조직 간부들에 대한 '유혈 폭력 진압'은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대정부 투쟁을 공식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초 지난 1일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무산됐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얼어붙은 사회적 대화에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급기야 한국노총은 오는 7일 전남 광양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 탈퇴 여부를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
한국노총은 현재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노동단체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대한 불신으로 1999년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현재까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사회적 대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탈퇴 논의 배경을 밝혔다.
한국노총이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과 김문수 위원장의 '반(反)노동' 발언 등으로 경사노위 탈퇴를 경고한 적은 있지만, 이를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약 논의 결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탈퇴를 결정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인 만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를 떠나면 노사정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는 경사노위 존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9·15 노사정 대타협 당시 이른바 '양대 지침'에 반발해 2016년 1월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경사노위에 합류한 바 있다.
특히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탈퇴는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의 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나마 '노동정책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왔는데, 한국노총마저 등을 돌리고 거리 투쟁에 나선다면 노동개혁 논의는 표류할 수 있다.
다만 정치적 부담 등을 감안할 때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탈퇴'라는 극단적 선택보다 '보이콧'(중단)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오는 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논의 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국노총의 대화 참여 카드로 김문수 위원장 '교체론'도 나오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김 위원장을 교체할 계획도, 교체할 방침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색된 노정 관계 속에서 같은 날인 8일 예정된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3차 전원회의 개최 여부도 주목된다. 부상을 입고 연행된 김준영 사무처장이 현재 최임위 근로자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지난 2일 저녁 구속됐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김 사무처장 구속은 노동자와 노조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과거 공안정권으로의 회귀 신호탄"이라고 격분하며 대정부 투쟁 의지를 거듭 다졌다.
일단 근로자위원인 양대노총은 현재로선 최임위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당일 안건이 최저임금 심의 쟁점 중 하나인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인 데다 이를 표결에 부칠 경우 한 표가 중요한 만큼 관련 대책을 논의 중이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노동계는 대정부 투쟁 수위도 연일 끌어올리고 있다.
양대노총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폭력 진압을 조장하고 오히려 부추긴 최종 책임자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퇴를 강력 촉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민주노총은 오는 24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이어 7월에는 3~15일 2주간에 걸친 총파업 투쟁을, 한국노총은 이달 말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노정 갈등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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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