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日강제노역 피해 생존자 공탁 불수리 이의신청 기각

"민법 469조상 피해자들 의사 반해 3자 변제 공탁 불가능"
"전범 기업 불법 인정하지 않는데, 면죄부 주는 결과 발생"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강제노역 피해 생존자들의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낸 공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이의를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광주지법 민사 44단독(강애란 판사)은 16일 일제 강제노역 피해 생존자인 양금덕(95) 할머니와 이춘식(103)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불수리 결정과 관련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하 재단)의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광주지법 공탁관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대신해 양 할머니와 이 할아버지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낸 재단의 공탁 신청을 불수리하자 재단이 이의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재판장은 민법 469조상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제3자인 재단이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양 할머니와 이 할아버지는 일본 측의 사실인정·사과가 없는 3자 변제안을 수용할 뜻이 없다고 밝혀왔다.

재판장은 결정문에서 "채권자(양금덕·이춘식)는 이 사건 판결금에 대해 3자 변제를 명백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민법 469조 1항에 따라 재단은 3자 변제 공탁을 할 수 없다. 이 사건 불수리 결정은 정당하므로, 재단의 이의 신청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판결금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채권(위자료 청구권)이다. 위자료는 정신적 손해의 전보적인 성격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제재적 기능, 금전적인 만족 이외에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격적 모욕 등 불법적이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피해자를 심리적·감정적으로 만족시키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가해(전범) 기업이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재단이 3자 변제를 통해 판결금을 변제한 이후 가해 기업에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가해 기업에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결과가 발생, 채권자(양금덕·이춘식)로서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채권의 만족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채권자의 반대 의사 표시가 명백하면 3자 변제를 제한하는 것이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와 위자료의 제재적·만족적 기능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장은 공탁 규칙 48조상 불수리 결정 권한이 있는 공탁관이 심사권을 적절하게 행사했다고도 판단했다.


외교부와 재단은 이의 신청이 기각되자 항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지법도 지난 15일 재단이 고(故)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 2명을 피공탁자로 한 공탁에 관한 불수리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한 사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지난 3월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2018년)을 받은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15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재단이 지급한다는 3자 변제 해법을 내놨다.

발표 이후 원고 15명 중 11명이 이 해법을 수용했지만, 생존 피해자 2명(양금덕·이춘식)과 사망 피해자 2명(박해옥·정창희)의 유족들은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정부와 재단은 3자 변제를 거부한 원고 4명(상속인 포함 총 11명)의 채권을 공탁으로 소멸시키려고 광주·전주·수원 등 전국 법원 7곳에 연이어 낸 공탁 신청을 공탁관이 불수리하자 이의 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 상속인이 아닌 숨진 피해자(피공탁자가 될 수 없음)를 대상으로 공탁을 신청하거나 필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졸속·부실 공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와 재단은 피해자들의 거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공탁서를 관할이 아닌 법원에 보내기도 했다.

공탁을 통한 정부와 재단의 3자 변제는 위법하다는 이번 광주·전주지법의 결정은 향후 다른 법원의 결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양 할머니의 법률 대리인 김정희 변호사는 "정부가 일방통행식으로 피해자의 채권을 소멸시키려는 것을 법원이 제동한 것"이라며 "판결금 공탁 불수리 이의 신청을 기각한 결정은 재단이 3자로서 변제할 자격과 공탁 자격이 없다는 것으로, 3자 변제안 자체가 법적 효력이 없다는 의미"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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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