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사? 민족 버린 작곡가?'..정율성 논쟁에 엇갈린 여론

항일 무장단체 출신 중국 3대 작곡가인 정율성 선생 역사공원 조성사업으로 불거진 이념 논쟁을 바라보는 시민 의견은 엇갈렸다.

23일 오전 광주 남구 한 아파트단지 외벽에 조성된 정율성 거리전시관.



벽보형 안내판에는 정율성 선생의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 이력부터 중국 공산당원으로서의 작곡 활동 등 일대기가 소개돼 있다.

우연히 지나가던 시민들도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담긴 사진과 글에 살폈다. 중절모를 쓴 한 노인은 중국 3대 작곡가로서의 위상이 담긴 안내판을 한참 바라보다 발길을 떼기도 했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형물도 이따금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방 전후 중국과 북한을 오간 정율성의 행적과 그를 기리는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박모(47·여)씨는 "항일투쟁 세력 내에서도 이념에 따라 노선이 나뉘었던 시대였던 만큼, 분단 이후 우리 시각에서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운 인물 같긴 하다"면서도 "일평생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작곡가로서 이룬 성취까지 부정할 필요까지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인근 상인 이모(45)씨는 "우상이나 영웅으로 떠받다는 시설이나 기념사업은 아닌 걸로 안다. 어떤 정파적 목적을 갖고 문제 삼자고 드니 논쟁이 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념 색채를 떠나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그의 음악적인 업적을 높게 평가해 적잖은 관광객들이 여전히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반면 대학생 최모(27)씨는 "안내판만 보더라도 광주 출신 작곡가로서 음악적으로 남긴 성과는 크다는 것을 알겠다. 그러나 항일독립투쟁을 제외한 생애이력을 보면 예산까지 들여 생가 복원 등을 굳이 해야 하나 싶다"고 주장했다.

강모(81)씨는 "아무리 나라 잃고 중국공산당 지원으로 활동했다지만, 분단 과정에서 정율성이 북한군 군가를 만들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면서 "과거 인물을 평가하려면 당연히 잘한 일, 잘못한 일은 따지고 뭘 교훈으로 남길 지 고민해야 한다. 세금 들이는 일이라면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에 대해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 하고 중국에 귀화, 민족을 저버린 인물'이라 맹비판했다. 특히 중국 팔로군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북한인민군 행진곡 등을 지은 이력을 문제 삼았다.

박 장관은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다"며 광주시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전면 철회를 요구,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곧바로 "정율성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 광주의 눈에 그는 뛰어난 음악가며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다"며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하겠다"고 반론했다.

정율성기념사업회장 측도 해방 전후 시대적 환경을 들어 "박 장관의 발언은 이분법적 이념사고에 갇힌 발상이다"라고 반발했다.

국가보훈처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최치현 전 청와대 행정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인사, 정책, 경제, 외교의 실패로 내년 총선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국가보훈부를 앞세운 반공 이데올로기가 부활했다"며 "호남을 고립시키고, 이념적 대립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정교한 작업으로 해석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광주시는 중국 3대 음악가로 꼽히는 동구 불로동 정율성 선생 생가를 복원, 사업비 48억 원을 들여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공원은 내년 초 완공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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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