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위반 무죄…이철우 목사, 국가 배상 파기환송심 승소

495일 불법 구금, 인권 침해·정신적 고통 배상해야

1970년대 후반 '유신 철폐'를 외치던 청년들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에 항의하다가 불법 체포·구금된 이철우 목사(72·전 5·18기념재단 이사장)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2민사부(재판장 이흥권)는 이 목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국가는 이 목사에게 1억 346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목사는 1978년 8월 전북 전주 한 초등학교에서 기독교 장로회 관련 행사를 마친 뒤 청년들과 함께 전주 모 교회까지 행진에 나섰다.

이 과정에 청년들은 '유신 철폐' '양심수 석방' '언론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청년들을 상대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 목사는 이에 항의하다가 연행됐다.

이 목사는 피의사실 요지나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받지 못한 채 영장 없이 체포·구금됐다. 얼마 뒤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며, 다음 달 기소될 때까지 구금된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

이 목사는 1979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자격 정지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목사는 2013년 4월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위헌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한 것은 국민의 신체 및 인신의 자유·행복추구권·적법 절차에 따른 형사처벌 원칙·거주 이동의 자유 등을 위배하거나 과도하게 제한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국가가 긴급조치 제9호를 근거로 자신을 체포하고 구금상태에서 수사하면서 기소·유죄의 재판을 한 행위 역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국가 소속 공무원들이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자신을 체포했으며 구속기간을 초과해 장기간 구금하는가 하면 변호인의 접견권을 침해한 상태로 고문·폭행 등의 불법행위를 가했다며 이에 따른 위자료 성격의 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긴급조치 9호 발령이 불법이라는 이 목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이 목사를 34일 동안 불법 체포·구금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원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가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정당성을 상실한 긴급조치 9호 발령·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본 손해를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은 장기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이 목사가 2013년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이후 민사소송을 제기한 만큼 소멸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목사가 긴급조치 9호로 495일간 구금돼 인권 침해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점, 이 사건 불법 행위의 중대성, 인권 침해 행위 재발 방지 필요성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3억 원으로 정했다며 국가는 형사 보상금을 공제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한편 긴급조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공포한 유신헌법을 바탕으로 1호부터 9호까지 발령됐다.

이 중 1975년 5월13일 공포된 9호는 집회·시위, 유신헌법에 대한 부정·반대, 개정·폐지 주장 등을 일절 금지하고 이에 따른 명령 및 조치는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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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