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5·18 유혈 진압 나와 무관"…진상조사 결과는 "인정 못해"

정호용 "5·18 책임자 내몰린 배경, 정치적 희생양서 비롯"
조사위 "정호용 주재 회의 중복 진술 등 확보…책임 회피"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를 지휘하며 시위를 유혈 진압한 혐의로 처벌받은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에 관련 재조사를 촉구하며 냈던 진정서의 내용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전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정 전 특전사령관의 주장에 조사위는 "작전 지휘 책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3일 조사위에 따르면 정 전 특전사령관은 지난 2021년 2월 자신과 관련된 5·18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 전 특전사령관은 진정서를 통해 스스로가 5·18 당시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자신이 책임자로 내몰린 것은 정치적인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5·18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군수행정과 인사 분야에서만 일했고 예하 1~13공수여단은 시위 진압 직전 육군본부가 별도 작전 명령을 내려 출동지역 사령관에게 지휘권을 넘겼다'며 '작전 기간 열흘 동안 스스로 광주에 머문 기간은 5월20일을 시작으로 같은달 27일 사이 사흘에 불과하다. 작전 지휘를 위해서는 24시간 상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예하 여단의 실탄 지급 내지는 경고 사격, 엄호 사격, 자위권 발동, 발포 등 사격 명령과 나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대시민 발포 문제는 광주에 오기 전부터 발생한 것이다. 지휘통솔권이 없는 내가 (발포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내가 5·18 주동자로 몰린 것은 1988년 노태우가 3당 합당을 추진하며 김종필, 김영삼에게 자신의 정계 제거를 약속하는 각서를 써준 탓'이라며 '5·18 책임자 또는 발포자라는 누명을 쓰고 내란목적 살인죄로 처벌받은 것이 억울하다'고도 했다.

조사위는 주장에 대한 분석에 착수, 정 전 특전사령관이 5·18 당시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정 전 특전사령관이 광주에 처음 내려온 5월20일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성격의 회의를 주재했으며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사회를 봤다는 중복 진술이 확보됐다.


3,7,11 여단장이 참여한 해당 회의에서는 시위 진압 작전 상황이 직접적으로 논의됐다. 회의는 정 전 특전사령관이 광주를 오갈 때마다 열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특전사령관의 과거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7가지 핵심 증거도 조사위 조사 결과 모두 사실인 것으로 재차 파악됐다.

전교사 상황실 2층에 특전사령부 전용 상황실을 꾸리고 운용한 내용, 5월26일 밤 광주로 내려와 27일 새벽 예고된 상무충정진압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배분한 사실 등이다.

나아가 조사위는 정 전 특전사령관의 진정서 제출 배경이 과거 유죄판결을 받은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고있다.

조사위 관계자는 "정 전 특전사령관은 진정서 내용을 인정받은 뒤 재심을 통해 자신의 내란목적살인죄를 뒤집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정서 제출 당시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할 태도를 보였으나 법률자문을 통해 재심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이후 서면 답변을 2차례 제출하고 해외로 도피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조사에 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증거들로 미뤄봐 정 전 특전사령관이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을 인정할 수 없었다"며 "그를 지휘계통 등 책임 선상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오는 6월까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담은 대국민 보고서를 발표한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주 / 장진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