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유사업무 근로자 없으면 근로 내용·가치 등 고려해야"

도로공사 수납원 조무원 인정…보조원은 미인정
"손해배상 청구 기간 산정은 청구인의 몫"

사용자에게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했지만,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을 때에는 근로의 내용·가치,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한국도로공사의 고속국도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수납 업무를 수행한 외주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일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도 도로공사와 직접 용역계약을 체결하거나 용역업체에 소속돼 상황실 보조 업무를 수행한 보조원들이 파견법상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했음을 전제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배상금 47억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앞서 도로공사는 2007년께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따라 일부 직종의 기간제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다만 기간제 통행료 수납원들과 기간제 상황실 보조원들은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도로공사에서 수납업무 용역계약을 맺은 외주업체 소속 수납원들(596명)은 지난 2019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파견법상 직접고용 간주된 근로자이거나, 도로공사에게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정받았다. 이에 따라 수납원들은 도로공사 예규 중 조무원의 임금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보조원들 역시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할 경우 예규 중 조무원(경비원)의 임금 등에 관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도로공사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를 제정했고, 2014년 1월부터 현장직에게 동일한 기본급표를 적용했다.

도로공사의 인사규정상 현장직은 직군의 하나이고, 조무원은 현장직에 포함되는 직종의 하나다. 예규에 의하면 경비원, 청소원, 식당조리원 등이 조무원에 속하며, 조무원은 2014년 현장직의 임금수준이 동일해지기 이전까지 도로공사의 무기계약직 근로자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사용 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이 간주되거나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했지만,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 어떤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지였다. 파견법 제6조의2에는 고용의무를 명시하며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져서는 안 된다'고만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수납원들의 손해배상 소송 원심에서는 수납원들의 손을 들어주며 215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1심은 외주사업체가 지급한 법정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공제하지 않았으나, 2심(원심)에서는 해당 부분을 공제해 총 지급액 일부가 감액됐다.

보조원들 역시 1심과 2심에서 일부 승소하며 약 4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었다.


다만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 ▲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납원들에 대한 상고심에서는 "외주화 이전에 통행료 수납업무를 담당한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그 당시 청소원, 경비원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보다 다소 높았던 점에 비추어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적어도 도로공사의 조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적용했을 것"이라며 원심 판결을 수긍했다.

다만 보조원들에 대해서는 "조무원과 상황실 보조원의 노동강도가 동일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업무 내용의 차이까지 고려해 보면 상황실 보조원의 근로의 가치가 도로공사 조무원과 같거나 그보다 높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조무원의 지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아울러 "만약 기존 요소들을 고려하더라도 파견근로자에게 적용할 적정한 근로조건을 찾을 수 없다면 파견법 제6조의2 제3항 제2호에 따라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새롭게 판시했다.

수납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기간 산정과 관련해서는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등 도로공사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됏따고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간주되거나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해 직접 고용할 경우, 동종·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을 때 적용할 근로조건에 관해 최초로 판시했다"고 말했다.

또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고 있던 기간에 대해 임금 등을 청구하기 위한 요건과 증명책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법원.검찰 / 김금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