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집에 숨은 마약밀수범…대법 "범인도피교사 아냐"

지인 집에 숨어 도피…거짓말로 수사관 따돌려
대법 "통상적인 도피의 유형으로 볼 여지 충분"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수사선상에 오르자 도피하던 도중 지인의 집에 숨어 수사관을 따돌려도 범인도피교사죄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범인도피교사죄 : 범죄자가 타인에게 자신의 도피를 위해 교사(강제)한 것으로, 타인이 범죄자를 숨겨준 범인은닉죄와는 구분된다.

A씨는 태국에서 국제우편물 등을 통해 마약 1.5㎏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지인에게 자신을 은닉해달라고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마약 밀수 혐의로 자신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친하게 지내왔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머물 곳이 있느냐.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1대만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지인의 집에 함께 머물러 도피 생활을 했다. A씨의 지인은 자신의 주거지로 찾아온 검찰 수사관에게 "나는 번호도 모른다.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과 연락을 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도피를 도왔다.

1심과 2심은 마약 밀수와 함께 범인도피교사도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8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형사 피의자로서 갖는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자신의 범행이 발각된 이후 은폐하려 했고, 도피해 국가의 사법기능을 훼손하려 시도했다"고 판시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 부분까지 모두 유죄로 인정해 하나의 형을 선고했기 때문에 원심 전체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지인에게 요청한 도움의 핵심은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라며 "이러한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지인 사이에 암묵적으로 소재에 대해 허위 진술해달라는 취지의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도피 결과를 형사 피의자로서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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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