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넘게 다녔는데"…주민·땅주인 갈등, 도로 폐쇄까지

'목적 외 사유지 사용' 지적에 땅주인이 표지판 설치
법적 제재 근거 없는 비법정도로…갈등 봉합 하세월

광주 서구 마륵동 한 농촌에서 벌어진 마을 주민들과 땅주인 사이 갈등이 60년 넘게 쓰여온 농로 폐쇄로 이어졌다.

행정 당국은 주변 임시 도로를 놓으면서 주민과 땅주인 사이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갈등이 봉합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18일 광주 서구 등에 따르면 서구 마륵동 월암마을과 벽진동 벽진마을을 잇는 500여m 농로 중 일부 구간 한복판에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해당 표지판이 농로 30여m 구간(폭 2m)을 앞뒤로 가로막으면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누군가가 옮길 수 없도록 포장도로 위에 단단하게 박힌 상태기도 하다.

표지판에는 사유지 내 외부 차량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땅주인 명의로 담겼다.

표지판이 생기면서 마을을 오가는 주민은 물론 농로 주변에 세워진 공장을 출·퇴근하는 노동자 또는 택배 기사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이 농로가 마을 사이를 가장 가깝게 잇는 길목인 점에서 땅주인을 성토하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당초 차량을 이용해 월암마을과 벽진마을 사이를 오갈 경우 폐쇄된 농로를 이용하면 1분 여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는 제2순환도로 주변을 이용해 돌아가야 하면서 10여 분 가까이 소요된다.

여기에 불가피하게 차량이 필요한 긴급 상황이라도 발생할 경우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표지판 설치 문제는 올해 초 땅주인과 마을 주민들 사이 불거진 갈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땅주인 A씨는 그간 사유지 사용을 두고 일부 마을 주민과 갈등을 빚어왔다. 사유지 내 지목이 행정 당국에 '밭'으로 신고돼있었음에도 고물상을 입점시켜 세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수차례 관련 민원이 이어지자 A씨는 올해 초 사유지 내 고물상을 철수시키고 밭으로 원상복구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유지 위에 놓인 농로를 표지판으로 막아버렸다. A씨는 표지판 설치 이유를 묻는 행정 당국에 '마을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법대로 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해당 농로는 법 테두리 바깥에 놓인 관습법상도로(비법정도로)인 탓에 A씨의 행동을 제지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농로는 도시계획과 별개로 최소 60여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농로 좌우로 보행자와 이륜차가 통행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남겨두면서 형법상 공공교통방해죄에 저촉될 여지도 적다.

갈등 봉합에 나선 행정 당국은 임시로 주변에 도로를 놓았다. 마을 옆 탄약고 주변 오솔길을 4m 폭으로 넓힌 뒤 자갈을 깔아 당분간 이용토록 했다.

하지만 A씨가 마을 주민과 대화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중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구 관계자는 "농로가 비법정도로이며 사유지 위에 놓인 탓에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땅치 않다. 판례상으로도 사유지 위 구조물이 있더라도 도로 통행이 가능할 정도 폭이 확보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며 "비슷한 문제 대부분이 민사소송으로 해결되고 있으나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행정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70대 주민 B씨는 "65년 전부터 여기 살아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주변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조차 안되는 곳인데 주민들을 상대로 무슨 몽니를 부리겠다는 건가. 긴급상황이 터지면 책임이라도 질텐가"라며 "행정은 설득 외에도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해 번듯한 도로를 놓던가, 땅을 사들여 도로를 놓던가 대책을 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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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본부장 / 최유란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