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최강' vs '범죄 온상'…'두 얼굴'에 스스로 위기 맞은 텔레그램

전 세계 월 사용자 수 9억5000만명(지난달 기준)에 달하는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사유는 텔레그램이 마약 밀매, 아동 성범죄, 사이버 폭력, 테러 조장 등 각종 범죄를 위한 소통 공간으로 악용됐는데도 최종 책임자인 그가 알고도 방치했다는 점이다.

텔레그램은 다른 메신저와 달리 상대적으로 강력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범죄를 모의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악용돼 한국에서도 'N번방'과 같은 성 착취물 제작·유통 사건 등 대형 범죄 온상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 [자카르타=AP/뉴시스] 24일(현지시각) TF1 등 프랑스 외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두로프 CEO가 이날 오후 8시께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25일(현지시각) AFP통신, BBC 등에 따르면 두로프는 지난 24일 오후 8시께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됐다. 당시 그는 개인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로 입국하던 중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프랑스 경찰이 두로프를 범죄 조정대리자로 간주해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램이 각종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데 CEO인 그가 제대로 조처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도이치벨레(DW)도 프랑스 경찰 내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담당 기관(OFMIN) 수사관 발언을 인용해 그가 사기, 마약 거래, 사이버 폭력, 테러 조장 등 혐의에 대한 예비조사 일환으로 체포됐다고 전했다.

미국 공영 매체 NPR은 파리 검찰청이 26일 두로프 체포와 관련한 공식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뛰어난 보안성에 정치인·기업인 등이 애용…국내에만 한 달에 316만명 써


2013년 8월에 출시한 텔레그램은 종단간 암호화 기술 기반 비밀 대화 서비스로 많은 사용자를 모았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송신자 기기(스마트폰 등)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기술이다. 메시지 송신과 수신까지 이어지는 경로(서버)를 수색해도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反)검열'을 중시한 그의 전략에 텔레그램은 비밀 대화가 필요한 소통 창구 대명사로 떠올랐다. 홍콩 민주화 시위 등 세계 각지에서 민주화운동이 진행되는데 전문 메신저로 쓰였다. 이러한 인기에 두로프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텔레그램 전 세계 월 사용자 수가 9억5000만명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대통령실, 정치인, 기업 임원 등이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은 카카오톡 '비밀 채팅', 라인 '레터 실링'에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 네이버와 달리 텔레그램은 해외 기업이라 사법기관 요청에도 자유롭다는 인식 때문에 텔레그램 이용자가 늘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텔레그램 앱 월 사용자 수는 316만291명으로 지난 1월 대비 약 6% 늘었다.

◆성범죄부터 마약·테러 소통 창구된 텔레그램, 막을 방법 없어


하지만 뛰어난 보안성은 '익명 범죄 온상'이라는 오명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수사망에도 피할 수 있어 마약 밀매, 성 착취 영상물 유포 등 범죄 가해자 대부분은 소통 창구로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ISIS가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데 텔레그램을 이용했다. 지난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극우 세력도 텔레그램으로 주로 소통했다.

텔레그램은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 온상으로도 지목됐다. 최근 반이민주의, 반이슬람주의 성향의 영국 극우 세력이 텔레그램 등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시위를 유도했다. 지난달 말 영국 한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여아 3명을 숨지게 한 10대 청소년이 무슬림이라는 내용을 퍼뜨렸는데 사실 그는 기독교도가 다수인 르완다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은 익명 범죄, 가짜뉴스 창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히 등장했다. 2019년 'N번방' 또는 '박사방'으로 알려진 성 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주빈 등이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경찰은 텔레그램 본사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대표 이메일 계정으로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텔레그램 측이 경찰 메일 7건을 모두 회신하지 않아 한동안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도 '대학생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집단 성범죄’ 사건, 마약 밀매 등 텔레그램을 통한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누누티비 등 영상 콘텐츠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공지사항도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이용자 보안을 중시하는 방침 아래 수사에 비협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범죄 행위로 의심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하는 방식으로 가해자를 찾는 데 그치고 있다.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이 시행 중이지만 정작 범죄에 사용됐던 텔레그램은 '사적 대화방'으로 분류돼 성범죄물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 의무와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 대상자에 빠져 있다.

◆"범죄 온상, 두로프 체포 당연" vs "터무니 없는 일, 언론 자유 해쳐"


한편 두로프 체포 소식에 국내 네티즌은 "그의 체포가 필요했다"는 찬성 의견과 "살인하도록 나뒀다고 칼, 총 만드는 사람 체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반대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조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자신의 엑스 계정에 해시태그 '프리파벨(FreePavel)'을 내걸었다.

텔레그램 측은 두로프 체포 다음 날인 25일 '텔레그램 뉴스' 채널을 통해 "디지털 서비스법을 포함한 EU법을 준수한다. 업계 표준 내에서 검열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플랫폼 또는 그 소유자가 플랫폼 남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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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