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리베이트, 의사부부 결혼식·신혼여행 비용까지…의약품업체 등 세무조사

국세청, 의약품·보험중개·건설업체 등 47개 세무조사
CEO보험 가입 사주 자녀 보험설계사 등록 1억원씩 지급

사례1. 의약품 업체 A사는 자사의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병·의원 원장 부부의 고급웨딩홀 예식비, 호화 신혼여행비, 명품 예물비 수천만원을 대신 지급하는 등 의료인의 사적비용을 대납했다. 의사의 자택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소파 등 고급가구, 대형가전을 배송하는 등 의료인 및 병·의원에 고가의 물품을 제공했다. A사의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해 병원장, 개업의 등에게 전달하고, 마트에서 '카드깡'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의료인에게 지급했다. A사는 불법 리베이트에 지출한 비용 수백억원을 회사경비로 변칙적으로 회계 처리해 법인세를 탈루했다.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A사 영업담당자들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료인을 밝히느니 그들의 세금까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사례2. 중소법인에게 'CEO보험'이라고 불리는 경영인정기보험을 중개 판매하는 업체인 B사는 보험에 가입한 중소법인의 사주 본인·배우자·자녀 등을 보험설계사인 것처럼 거짓 등록한 후 모집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리베이트 제공했다. 가입법인 사주의 10대 및 20대 자녀를 보험설계사로 등록해 각각 약 1억원의 모집수당을 리베이트로 지급하거나 가입법인 사주의 20~30대 자녀 4명을 모두 보험설계사로 등록해 각각 수억원의 모집수당을 리베이트로 지급했다. B사는 해당 모집수당으로 지급한 비용 수십억원을 정상적인 인건비인 것처럼 처리해 법인세를 탈루했다. 이밖에 B사는 사주일가에게 업계 평균의 3~4배에 달하는 과다보수를 지급하거나, 가공인건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법인자금을 유출했다.



국세청은 관련 법률에서 리베이트 수수 행위를 명확히 금지하고 있는 분야로 의약품 업체 16개, 보험중개 업체 14개, 건설 업체 17개 등 총 47개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고 25일 밝혔다. 리베이트는 판매한 상품·용역의 대가 일부를 다시 구매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이다. 흔히 일종의 뇌물적 성격을 띤 부당고객유인 거래를 말한다.

이번 조사 대상은 의약품 처방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에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약품 업체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의사 부부의 결혼 관련 비용 일체와 같은 의료인의 사적인 비용을 대납하고, 병·의원과 의료인에게 물품 및 현금을 지급하거나 영업대행사(CSO)를 통해 우회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과거 세무조사에서는 의·약 시장의 구조적 제약, 리베이트 건별 추적 시 소요되는 인력·시간 등의 한계로 인해 의약품 업체의 리베이트 비용을 부인하고, 제공 업체에 법인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이번 조사 진행 과정에서는 리베이트로 최종이익을 누리는 자를 파악해 의약품 리베이트를 실제 제공받은 일부 의료인들을 특정해 소득세를 과세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 의약품 업체 영업담당자들이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료인을 밝히느니 그들의 세금까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며 하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제약업체에 있어서 의료인들은 완전한 갑이기 때문에 어떤 제약업체가 리베이트 증거를 다 실토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제약업체는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할 수가 없다"며 "의료계 카르텔 모습의 일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례는 신종 유형으로, CEO보험(경영인정기보험)에 가입한 법인의 사주일가 등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한 혐의가 있는 보험중개 업체다. CEO보험은 법인비용으로 가입하는 일종의 보장성보험으로 CEO 또는 경영진의 사망이나 심각한 사고 발생 시에도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보험금을 법인에 지급하는 것이다.

보험업법은 보험계약자에게 금품 등 특별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특정인에게 특별이익이 제공되면 선의의 다른 구성원에게 부담 전가 및 차별 대우가 발생해 탈퇴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보험료 부담 및 보험금 지급의 균형이 무너져 보험시장의 유지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초고가의 중개수수료를 수취하려는 보험중개법인과 법인세,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중소법인 사주들의 이해관계가 결합해 CEO보험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입법인의 대표자와 배우자, 자녀 등 특수관계자를 보험설계사로 허위 등록하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자에게 많게는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보험중개 업체는 법인의 비용으로 고액 보험료를 납입하므로 법인세가 절감될 뿐만 아니라 자녀 등이 고액의 설계사 수당을 지급받으므로 사실상 법인자금으로 증여세 부담 없이 증여할 수 있다고 유인했다.

국세청은 리베이트 비용을 부인해 보험중개법인에게 법인세를 과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리베이트 이익의 최종귀속자인 보험가입법인 사주일가 등에도 정당한 몫의 소득세를 과세한다.

이날 발표에는 재건축조합, 시행사 등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건설 업체 사례도 포함됐다. 건설 리베이트는 자금 마련 과정에서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등 건전한 거래질서를 훼손해 이는 비리와 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건설 업체의 불필요한 지출을 유발해 아파트, 주택 등의 품질 하락을 초래하고, 국민 주거 안정을 저해한다.

민주원 국장은 "국세청은 앞으로도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리베이트 수수 관행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며 "다른 산업 분야의 리베이트 수수 행태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사회적 부작용이 심각한 사안은 빠짐없이 조사하여 반사회적 리베이트 탈세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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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조봉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