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못 돌아온 아버지"…부친 등 피해 사실 밝혀
"나이 들어가는 유족들…제2의 기억 투쟁 나서야"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의 유족들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면서 강제노역 피해 사실을 공개 고발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8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고발대회를 열었다.
이날 고발대회는 강제노역 피해 사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지적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고발대회에는 유족 5명이 나와 가족이 겪은 피해 사례들을 밝혔다.
서태석(84)씨는 아버지 서조왕금씨의 일생을 읊으며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했다. 서씨의 아버지는 1941년 일본 해군 군속으로 붙들려갔다가 광복을 맞지도 못한 채 1943년 5월 남태평양 팔라우 섬에서 숨졌다.
일제를 피해 고향 전북 군산에서 처가가 있는 전남 담양으로 옮겼지만 끝내 징용되고 말았다. 서씨의 아버지는 남양군도 내 일본 해군 4시설부의 공사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씨가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은 어릴 적 찍은 흑백 가족 사진 한 장이 전부다. 팔라우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동료로부터 단체 사진을 받은 것이 아버지의 행적을 알리는 유일한 흔적이다. 서씨는 아직도 아버지의 유골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
한문수(82)씨도 아버지 한두석씨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일본을 향한 원망을 쏟아냈다.
한씨의 아버지는 한씨가 태어난 지 고작 6개월 만인 1942년 11월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남태평양 트럭섬 소재 제4 해군시설부의 비행장 활주로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혹사당하던 한씨의 아버지는 강제노역 투입 2년도 안된 1944년 2월 남양군도 브라운 섬에서 숨졌다. 일방적인 전사통지서가 날아오자 한씨의 할아버지는 원통해하다 6개월 뒤 화병으로 숨졌다.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활동에 나서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13년 동안 싸워왔으나 기각당했다.
피해자 박신우씨의 아들 박진주(76)씨는 아버지가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에 휘말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1945년 8월24일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폭발해 침몰한 사건이다. 한국인 희생자는 수천 명에 다다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씨는 살아남은 아버지가 강제노역과 탈출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얻어 크게 고생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외교부에 전달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단 일부에 대해서는 "명단을 줬으니 독도를 달라고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탄광에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된 큰아버지를 찾는 천양기(72)씨, 귀국 도중 목선 화재로 옥매광산 광부 118명이 숨진 아수라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진상규명에 힘쓰고 있는 유족 박철희(67)씨의 사연도 공개됐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상임이사는 "죽어서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많다. 조선인 출신 군속사망자의 위패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죽어서까지 영혼이 짓밟히고 있다"며 "상처와 후유증을 대물림하고 있는 유족들의 나이가 80에 접어들었다. 역사적 진실을 지우려는 일본에 맞서 제2의 기억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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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