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에 벼멸구 피해 2만㏊ 육박…피해 빠르게 확산
긴급방제 역부족…"자연재해 인정, 특별재난지역 선포해야"
전남도, 도의회, 농민단체 "쌀값 폭락 만으로도 애통한데…"
수확기를 코 앞에 두고 쌀값 폭락으로 가뜩이나 시름에 젖어 있는 일선 농가들이 이번엔 중국발(發) 벼멸구 습격으로 막대한 피해에 직면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역대급 폭염에 따른 피해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농업재해로 인정하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2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재 전남지역 벼멸구 피해 면적은 1만9603㏊로 추산된다. 지난해 피해 면적(175㏊)의 112배, 여의도 면적(290㏊)의 68배에 이르는 규모다. 최근 5년 간 평균 피해 면적(3876㏊)보다도 5배나 많다.
올해 전국 피해 면적(3만4000㏊)의 57.6%가 농도(農道) 전남에 집중된 셈이다. 지난달 22일 6696㏊이던 것이 2주일새 3배나 증가했다. 태풍이 지나며 기온이 떨어졌음에도 확산세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전남도는 이번 벼멸구 습격을 중국발 중대 농업재해로 보고 이를 정식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정부 건의만 네 번째다.
도는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지난 2014년과 2022년 벼 이삭도열병 등 병해충을 재해로 인정해 각각 1만5000㏊에 27억원과 4만㏊에 331억원을 복구비로 지원한 사례를 제시했다.
또 일본식물방역협회의 예측모델 등을 분석해 벼멸구 발생과 확산 원인이 올해 중국에서 다량 발생한 벼멸구가 7~8월 사이 국내로 날아왔고, 국내에 정착한 후 9월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논리도 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평균기온이 27.2도로 평년보다 2.6도나 높았고, 폭염일수도 32일로 평년보다 22.7일이나 길어진 점도 불가항적 재해의 증거로 제시했다.
이로 인해 벼멸구의 부화일이 7.9일로 20도 미만일 때보다 5일이나 단축되고, 산란 횟수 역시 2회에서 3회로 늘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됐다는 게 전남도의 판단이다. 중국 남동부에서 발생한 벼멸구가 지난 7월, 저기압 기류와 8월 제9호 태풍 종다리 발생 시 국내로 다량 유입된 사실도 덧붙였다.
막대한 피해에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이날 대정부 건의문을 통해 "쌀값이 지난해 10월 21만222원을 정점으로 11개월째 하락해 9월 말 기준 17만4592원으로 폭락한 상황에서 벼멸구와 호우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 농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해남, 영암, 강진, 장흥 등 주요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촉구했다.
또 "폭염과 고온으로 발생한 벼멸구 피해를 재해로 인정, 수확기 전에 조속한 피해조사와 복구비를 지원하고, 농업재해 범위에 이상 고온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병해충 등을 포함해 줄 것"을 건의했다.
전남 시장군수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전남 벼 재배면적의 13.3%가 피해를 입었다"며 "폭염에 따른 병해충을 재해로 인정하고 산지 쌀값 20만원 유지와 수급 안정책 마련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남도의회도 성명을 내고 "올해 벼멸구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고 즉각 피해조사 등 긴급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김문수 농수산위원장은 "정부가 실질적 재해 인정과 구제대책을 미룬 채 피해벼 매입 계획만을 발표한 것은 농민을 우롱한 처사"라며 실질적 지원책을 촉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도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 농민대회를 열고 구체적인 벼멸구 피해 조사와 함께 정부의 재해 인정을 촉구했다. 한 참석자는 "쌀값 폭락과 벼멸구 피해까지 겹쳐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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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본부 정병철 보도국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