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취약계층 표적…파병 미군, 유학생 사칭
"계좌 동결 풀어줘" "통관비 내주면 갚겠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을 노려 호감을 사고 이들로부터 14억원을 뜯어낸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국제범죄수사계는 로맨스스캠 국내 총책인 러시아 국적 A(44)씨 등 12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총책, 자금세탁책, 인출 관리책, 인출책 등 12명 가운데 A씨 등 9명을 구속 상태로,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등은 올해 1~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피해자들과 친분을 쌓고 연인 관계를 형성한 뒤 각종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 68회에 걸쳐 14명에게서 14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일당은 파병미군, 유엔(UN) 직원, 유학생 등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SNS 프로필에 가짜 사진이나 경력 등을 기재한 채 불특정 다수에게 친구요청을 보냈으며, 인스타그램 DM이나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친분을 쌓아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피해자들은 대개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장기간 SNS 교류로 쌓인 감정적 유대 관계로 인해 일당의 꼬드김에 쉽게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한 40세 여성 피해자는 해외에서 근무하는 선박 조향사를 사칭한 일당의 "짐을 보낼 테니 통관비를 대신 내주면 갚겠다"는 말에 속아 1억3000만원에 달하는 대출까지 받아 총 1억6500만원을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한 26세 남성 피해자는 미국 유학생을 사칭 일당의 "이탈리아 디자이너 회사에 취업했는데 계좌가 묶여 있어 풀어야 한다. 해제 비용을 빌려주면 갚겠다"는 말에 속아 지난 4월27일부터 약 2주간 8회에 걸쳐 2900만원을 뜯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피해에도 로맨스스캠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 규정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아 경찰이 피해를 막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사기 이용 계좌 지급정지 등 임시조치를 해야 하는데, 로맨스스캠은 '재화의 공급이나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로 취급돼 법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과 구조가 유사한 로맨스스캠 사기에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 로맨스스캠 범행 이용 계좌는 국내에 입국했던 외국인이 출국 시 판매한 대포통장"이라며 "외국인 명의 계좌를 명의자의 체류 기간 만료 후 이용이 정지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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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