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미성년자도 법정 나와라"…퇴행인가, 공정인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 녹화 관련
헌법재판소서 '증거 인정은 위헌' 결정
피고인이 조서 부동의하면 법정 나와야
"보호 위해 피고인 반대신문권 제한돼"
공정 재판 받을 권리 중시한 판단인듯
여성 법조계 등 반발…"보호 공백 발생"
수사 단계서 증거보전 제도 활용 전망
증인보호 제도 활용도…"실효성 제고"

헌법재판소(헌재)가 조사 동석자 등을 상대로 한 증인신문을 통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녹화를 증거로 인정하던 현행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증거보전제도 활성화, 증인보호제도 실효성 제고 등이 과제로 떠올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헌재가 6대3 의견으로 구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 중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부분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 향후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신문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항은 미성년 피해자 진술 내용 등을 촬영·보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헌 결정 전까지는 녹화된 피해자 진술은 재판에서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 등이 진실하다고 확인만 해주면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이 조항은 예외적으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미성년 피해자를 법정에 재차 소환해 신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현행법은 피고인이 조서를 증거로 사용하기에 부동의하면 진술자를 법정에서 다시 신문하도록 하고 있다.

◆헌재, 위헌 결정…반대신문 보장 목적

헌재가 지난 23일 촬영·보존된 피해자 진술을 신뢰관계인 등의 진정 성립을 통해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근거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명의 재판관은 미성년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고인 반대신문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봤다. 피해자 보호라는 법익 달성을 위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비교적 덜 제한하는 다른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어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권 행사 자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재판 결과로 피고인을 설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위한 것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또 외국 입법 사례에서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권 보장 없이 조사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에 대한 반대신문만으로 영상녹화된 피해자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도 위헌 결정의 근거로 반영됐다.

◆피고인이 진술조서 동의 안 하면 미성년 피해자 법정에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들은 수사기관이 자신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위헌 결정 후부터는 검찰이 미성년 피해자도 증인으로 불러 법관 앞에서 신문해야 한다.


결국 헌재가 피해자 보호 방법으로 거론한 ▲증인보호제도 ▲증거보전제도 등을 언급한 만큼 향후 미성년 피해자 보호책이 실효성 있게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원은 2차피해 예방을 위해 성폭력 등 사건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 피해자와 분리시키기 위해 피고인을 법정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중계장치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실효성 있는 소송지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필요할 경우 1차 공판 전 증인신문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면, 본 재판에서 재차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법조계 반발 목소리…"19년 전으로 퇴행"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와 여성인권위원회는 위헌 결정 하루 뒤인 24일 "성폭력 피해 아동의 인권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며 "피해자들은 19년 전으로 돌아가 법적 보호의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도 같은날 "아동·청소년의 기본권과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조화를 단지 형식적으로 도모했다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미성년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법체계 구축을 촉구한다"고 했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중요 증거로 작용하는 만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탄핵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선애·이영진·이미선 재판관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범죄행위 만큼이나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며 "반대신문에 기대하는 기능과 달리 2차 피해만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합헌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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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김 호 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