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토론회서 자위대 개입 허용 시사
자위대, 1963년부터 꾸준히 진출 계획
'15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 기정사실화
미·일, 韓 정부 의사를 무시할 가능성 有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북한 급변 사태 등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북한 급변 사태 시 한반도 개입은 일본이 1963년부터 수십년째 추진해온 방안이다. 미국 역시 중국 견제를 이유로 일본의 계획에 사실상 찬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일제 식민통치 경험과 일본 정부의 과거사 관련 태도를 이유로 이를 꺼려왔다.
윤 후보는 지난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법정 TV토론회에서 '한미일 군사동맹도 검토하나', '유사시 한반도에 일본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인데 하겠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물음에 "한미일 동맹이 있다고 해서 유사시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지만 꼭 그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유사시에 한반도에 들어온다는 윤 후보 발언은 북한 급변 사태 때 일본 자위대가 북한 지역에 투입된다는 의미다.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을 역임한 박성황 선문대 교수는 '북한 급변사태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에 관한 소고' 논문에서 일본의 한반도 개입 계획이 수십년에 걸쳐 준비돼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회의는 1963년 '미쓰야겐큐(三矢硏究)'라는 모의 군사작전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반도에서의 무력 분쟁을 가정하고 비상사태 시 일본 방위를 위한 자위대 운용과 이와 관련된 제반 조치와 절차를 연구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요지는 북한 급변 사태 때 미일 공동 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때 공격은 미군이, 방어는 자위대가 담당하는데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한다는 게 일본의 구상이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1997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1999년 주변사태관련법 제정, 2002년 미일 공동 개념계획 5055 수립, 2015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신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보강돼왔다.
이 가운데 아베 총리 집권 시기인 2015년 4월 확정된 미일 방위협력 지침은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구체화한 계기였다.
이 지침에는 인접 지역 무력 공격으로 인해 일본의 안전이 위협받는 경우 일본이 자국 역외에서 군사 작전을 실시할 수 있다는 '독자적인 집단 방위권 행사 권한'이 담겨있다.
지침에 따르면 자위대는 북한 붕괴 시 북한 지역에서 미군과 북한군 혹은 중국군의 충돌이 있거나 예상될 경우 북한 지역에 진출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런 지침을 확정한 것은 북한 급변 사태 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의심에서 비롯됐다.
러시아는 탈북자의 러시아 진출 방지를 명분으로 함경북도 지역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북중 우호 조약상 자동개입 조항을 근거로 북한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과 긴 접경을 사이에 두고 있으므로 북한 전역에 진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동해안에 기지를 마련한다는 '동해출구(東海出口) 개척'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동해출구 개척을 저지하기 위해 자위대를 북한 동해안에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일본은 2018년 3월27일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소재 아이노우라 주둔지에 수륙기동단을 신설 배치했다. 육상자위대 소속으로 2100명 규모인 수륙기동단은 미국 해병대를 모델로 만들어진 상륙전 전담 부대다. 수륙기동단이 해병대 역할을 하며 북한 동해안에 상륙할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자위대가 북한에 진입하는 과정이 한국 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 영토든 북한 지역이든 반드시 한국의 동의를 얻어야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2015년 10월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북한은 한국의 영토'라고 말하자 일본의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한국의 지배가 유효한 범위는 휴전선의 남쪽'이라고 답변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를 놓고 일본 정치인들이 북한 붕괴 시 한국 정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 판단에 의해 자위대를 보내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미국 역시 암묵적으로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 정부로서는 한국 입장 고려보다는 중국 견제라는 자국의 지상과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전시 작전 통제권이 한국 정부가 아닌 미국 정부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 유사 사태 때 한국 정부 의사에 반해 자위대를 임의로 북한에 보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정부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한국과 한국인으로서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일본 평화헌법상 전수방위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중국의 패권주의 경향을 자극하고 동북아 전체에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자위대가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북한에 진입하지 않도록 미국과 서면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성황 교수는 "한미일 정치·군사적 협력 강화로 한국의 승인 없이는 한반도에 개입할 수 없다는 불개입 조항을 상호 협의해 법제화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일본과 중국, 러시아가 북한 급변 사태 시 유엔의 승인 없이 절대 개입이 불가하도록 사전에 문서화 내지는 합의가 이뤄지도록 미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13년 11월15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일본 집단적 자위권 관련 공청회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획득이 곧 역사적 반성 없는 일본의 보통국가화임을 미국에 성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차관은 또 "일본의 독도 및 위안부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 선회 없이 한국의 동의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임을 미국 측에 천명해야 한다"며 "미국에게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공조하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 간에 괴리가 있음을 강조하고 이 사안의 영향력을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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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부장 / 염선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