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헌법불합치 후 3년째 제자리걸음
보완입법 미흡…음지서 수술·낙태약 유통
오랜 입법 공백, 의료현장에서 악용 우려
전문가들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시행돼야"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 권리를 인정한 판례를 뒤집으면서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3년째 제자리 걸음 중인 낙태권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28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50년 만에 철회했다.
결정의 요지는 "미국 헌법에 임신중절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없으며, 로 판례가 해로운 결과를 불러왔으며 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곧바로 임신중절 금지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각 주는 이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 전면금지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낙태한 산모와 수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재는 낙태 결정 시기를 임신 22주로 보고 2020년 말까지 관련 법 조항 개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결정 3년이 넘은 지금까지 국회에서는 입법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보완입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음지에서는 암암리에 불법 낙태약들이 유통되고 있다.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임신중절 수술 광고와 낙태약 구입 정보에 관한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임신중절 수술이 비범죄화됐지만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의료 행위로 보장되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3년간 계류 중인 낙태권과 관련된 보완 입법에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의 운영위원인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주별로 입법이 굉장히 다르고 낙태가 죄가 아닌 상황이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난해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거나, 강하게 규제하는 주에서는 실질적으로 불법과 다르지 않은 상태가 지속돼왔다. 그래서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들도 많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형법과 모자보건법은 긴밀하게 연동해 작동돼왔기 때문에 모자보건법에 대한 전면 개정 혹은 새 입법이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며 "현재는 낙태가 처벌받는 죄는 아니지만 건강상의 한 부분이거나 필수적 의료행위로서 법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부의 진전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임신 중절약인 미프지미소 등 약물적 임신 중지 관련해서도 계속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셰어 대표이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위원장을 지낸 나영 활동가는 "현재 의료현장에서 나타나는 혼란은 입법 공백이 환자들에게 불안을 조성하고, 병원의 비싼 진료비 등을 수용하게 하는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공적인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연계진료, 보험적용 등 체계를 만드는 일을 정부가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보호출산제와 같은 보완 입법을 국회가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비의학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주수를 10주로 주장해온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낙태권 관련 논의는 20년도 더 됐다. 관련 논의는 이미 의료계와 복지부의 선을 떠났다"며 "국회에서 하반기에는 반드시 입법하겠다 했지만 그렇게 될지 의문"이라고 봤다.
김 회장은 "이번 미국 대법원의 결정으로 여당의 논의에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 출산등록에 익명성을 보장한 사회보장번호 도입 등 종합적인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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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