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조사위, 염경선씨 사망 경위 조사 중
교도소 주둔했던 군부대에 숨졌을 가능성
유골만 발견…외부서 숨진 뒤 유입 확률도
옛 광주교도소에서 출토된 유골 분석 결과 최근 확인된 5·18 행방불명자 염경선씨에 대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차원의 행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사위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염씨의 사망 경위 분석을 위해 5·18 당시 이곳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과 20사단 62연대 장병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조사위는 염씨가 이들 군부대가 저지른 가혹행위 과정에서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계엄군 양심 고백·트라우마 극복 사업인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해당 부대 소속 장병들의 증언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3공수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대 정문에서 진행된 시위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력 진압, 오후 4시께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기며 시민 120~150여 명을 지붕이 있는 트럭 수 대에 태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짐칸에 최루탄을 던져넣어 시민 일부가 질식해 숨졌다는 다수 증언이 나오면서 3공수가 이러한 시신 처리를 위해 교도소 내 암매장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3공수가 교도소에서 시민들을 학대해 수많은 시민이 죽었다는 진술, 교도소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을 사살하고 시신을 헬기로 옮겼다는 무수한 증언이 42년 동안 이어졌다.
행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20사단 62연대도 조사 대상이다.
20사단 62연대는 5월 24일 정오께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3공수여단과 교대해 5월 27일 새벽까지 교도소에 주둔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된 것은 드물다.
조사위는 20사단이 3공수 교대 이후에도 가혹행위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5·18 당시 교도관들이 기록한 '광주 사태 시 소요 체포자 치료현황' 문건에는 20사단 주둔 과정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해당 문건에는 5월 25일 체포자 중 부상자 58명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날 부상자 치료 건수가 84명으로 부쩍 늘었다가 20사단이 떠난 27일에는 109명으로 기록됐다.
5·18 당시 교도소로 연행됐던 강길조 옛 교도소생존자협의회장도 "20사단은 공사장에서 쓰는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시민들을 구타했다. 자신들을 'DMZ에서 온 저승사자'라며 시민들을 겁박했다"며 "20사단 주둔 시기에도 사망자들이 잇따랐다. 숨진 시민의 시신을 감옥 밖으로 옮긴 것은 확실하지만 이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염씨가 교도소 외부에서 숨진 뒤 유입됐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됐다.
염씨는 2019년 12월 20일 법무부의 놀이형 법 체험 테마파크인 '솔로몬 로(law)파크' 조성 준비를 위한 묘지 이장 도중 한 봉분 흙더미·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다른 유골 262구와 함께 발견됐다.
발견 당시 옷가지나 장신구 등이 없어 이미 다른 곳에서 숨진 뒤 유골만이 넘어왔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나아가 교도소 내부 시설 건축으로 인해 암매장지가 옮겨지면서 유해가 뒤섞였을 가능성도 떠오른다.
5·18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 출신 장교들이 '교도소 남서쪽 등지에 암매장·가매장했다'고 증언한 데 따라 A씨는 최초 이들이 증언한 곳에 묻혔을 수 있다.
이들이 지목한 암매장지가 1986년 교도소 서쪽에 들어선 오수처리장 시설이라면, 공사 도중 출토된 유골이 지난 2019년 발견됐던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80년대 사람들이 입던 의복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쉽게 썩지 않는다. 타지에서 숨진 뒤 발견된 유골만이 훗날 교도소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부에서 시신을 싣고 온 차량 등을 파악하거나 교도관들을 집중 탐문해 교도소 내 이장 과정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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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