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최다 배출국...16명으로 늘어
여성으로 17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자전적 글쓰기' 독보적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82)가 '2022 노벨문학상'을 품에 안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에르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작가 수상은 2014년 파트리크 모리아노 이후 8년 만이다. 프랑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최다 배출국으로 이번 수상으로 16명으로 늘었다. 여성 작가의 수상은 2020년 미국 시인 루이즈 글뤽 이후 2년 만으로, 여성으로 17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림원은 아니 에르노 작가에 대해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그의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가진 작가"라며 노벨문학상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에르노는 이날 스웨덴 공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단한 영광이자 대단한 책임감”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독보적 작품세계 구축
“에르노는 일관되게 다양한 시선에서 성별·언어·계급에 관한 불균형을 탐구해 왔고, 그녀의 작가의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대표 작가인 에르노는 ‘자전적 글쓰기’라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자전적 소설인 그녀의 작품들은 주체적 자아의식을 가진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직접 체험한 것만 쓴다"는 그의 작품으로 에르노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부상했다.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주제들을 드러내는 '칼 같은 글쓰기'로 이를 해방하려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그녀의 작품에 이미 매료된 독자들이 많다. 에르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단순한 열정’ ‘집착’ ‘탐닉’ ‘사건’ ‘세월’ ‘빈 옷장’과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 선집 ‘카사노바 호텔’이 번역돼 출간됐다.
◆빈곤층 출신 열등감 극복 중등교사 →대학 교수까지...'아니 에르노 문학상' 제정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난 에르노는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자영업자 부모 밑에서 살았다. 부엌에서 몸을 씻고 변소를 청소하며 산 빈곤층 출신으로 에르노는 학업으로 열등감을 보상받으려 했다.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1년 교수 로 임용되어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재직했다.
이같은 경력에 에르노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빈곤층 출신의 여자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과 소외의식은 1974년 발표하며 등단한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 1984년에 발표해 르노도상을 받은 '자리'로 작가는 글쓰기 태도에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하게 된다. 1991년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열정'은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화제작이 됐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됐다.
◆대표작 '단순한 열정' 등 국내 출판사들도 에르노 작품 출간 잇따라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올해에도 문학동네, 민음사, 1984BOOKS, 열림원 등 국내 출판사는 그의 최신작까지 8권을 잇따라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 '단순한 열정'(1991)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지독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2001년 처음으로 소개된 후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작품이다. 지난 2012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다시 한번 출간됐다. 이 소설은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 감정소설’에 속한다.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왔는데, 이 책의 내면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게 된다.
'세월'은 2008년에 출간된 에르노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1941년에서 2006년의 시간을 한 여성의 시각으로 서술한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서사를 담은 한편 일인칭 시점인 '나'가 아닌 '그녀'와 '우리'를 주어로 택하며 "비개인적인 자서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을 통해 프랑수아즈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도 올랐다.
에르노는 책을 통해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고 작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4북스를 통해 올해 5월 개정판이 출간됐다.
지난 3월 문학동네를 통해 '아니 에르노 문학선' 시리즈가 출간되기도 했다.
2011년에 출간된 선집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을 추려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비롯해 '탐닉', '집착' 등 총 3권이다. '집착'은 질투라는 감정에 점령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문학동네는 "질투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 중에서 '집착'은 작가 자신이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추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고 밝혔다.
한편, 노벨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1901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 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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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