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 말 했을뿐…제주 '변호사 살인' 피고인 무죄 주장

광주고법 제주 제3형사부, 파기환송심 첫 공판
검찰, 추가 증거·피고인 신문 없이 기존 주장 고수

23년째 해결되지 않은 제주 최장기 미제사건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의 공동정범으로 지목된 피고인이 세 번째 재판을 맞았다. 1심 무죄, 2심 유죄 판결에 이어 상고심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다.



검찰이 추가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지 않으면서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3형사부(부장판사 이재신)는 5일 오전 10시 살인 및 협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57)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협박 혐의에 대해선 형기(징역 1년6개월)를 마친 상태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씨는 1999년 8~9월 제주 지역 조직폭력배 조직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성명 불상자의 지시를 받고 같은해 11월5일 오전 3시15분에서 6시20분 사이 제주시 북초등학교 인근 거리에서 공범 A씨와 공모,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이 변호사 살해에 대한 공모 공동정범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모공동정범은 직접 실행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핵심적 영향을 끼친 의사 전달이 있다면 공모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검찰은 이날 별다른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피고인 심문도 진행하지 않았다. 김씨가 조사과정에서 살인 혐의에 대한 충분한 진술을 했고, 실행범 A씨 범행에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는 취지로 기존 주장을 유지했다. 항소심과 마친가지로 무기징역 선고를 요청했다.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1, 2심과 상고심 재판을 긴 시간 동안 진행해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죽은 친구(A씨)에게 들은 얘기를 잘못된 언행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재판 절차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선 반성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단지 들은 얘기를 말했다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며 "경·검 수사기관은 저의 말만 믿을 게 아니라 A씨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다만 시간이 오래지났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심을 내린 대법관의 판단을 존중하고 이번 재판부 판사께서도 이를 참작해달라.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김씨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7월26일 오전 9시55분 열릴 예정이다.

한편 김씨는 지난해 2월1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를 받았다. 다만 방송 취재진을 협박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과 김씨는 각각 법리오해와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당시 재판장 이경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17일 김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 원심(1심)을 파기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2심도 불복한 김씨는 상고장을 제출했고,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올해 1월12일 김씨에게 징역 1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2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상고심 재판부는 "피고인(김씨)의 제보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며 "범행 현장 상황 등 정황 증거만을 종합해 살인 고의 및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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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취재부장 / 윤동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