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연일 영남권 중진의 '희생(험지 출마)'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이에 김기현 대표 등 영남권 중진들이 험지 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김 대표는 솔선수범해야 할 여당 대표라는 점에서 그의 결단에 여권의 관심이 모아진다.

인 위원장은 3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영남권 중진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와 주호영 의원 등을 특정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경쟁력 있는 영남권 의원들이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인 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영남 스타 중진 수도권 출마 발언에 대한 비토가 많았다'는 지적에 "제가 뒤로 한 발 걸었다고(물러났다고)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며 "영남, 경상남·북도에 훌륭한 국회의원들이 서울에 와서 경쟁력이 있으면 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영남 스타 중진'의 예시로 주호영 의원과 김기현 대표를 들었다는 한 언론과 인터뷰를 겨냥해 "이름을 거명한 것도 없고, 거기에 더 큰 의미도 없고 더 작은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지금 뒤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소중한 사람들이 계신다"며 "우리 국민들이 희생했고 정치인이 덕을 봤는데 이제는 문화를 바꿔서 정치인들이 희생하고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사상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이와 관련해 "인 위원장은 당 혁신을 위해 영남권에 능력 있는 의원들이 서울로 와서 출마하는 방식으로 당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면서도 "이름을 못 박은 적은 없다"고 했다.

인 위원장이 당 안팎의 반발에도 '화합을 위한 대사면'에 이어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 카드를 고수하는 것은 비윤계 포용과 영남당 이미지 탈피 없이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로 확인한 민심 이반을 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대표와 영남권 중진들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수도권 험지를 택할지는 회의론이 상당하다. 김 대표는 울산에서 4선 국회의원, 울산시장 등을 역임한 중진이지만 낮은 대중 인지도로 지난 전당대회 초반 지지율이 3%를 맴돌았다.

한 수도권 의원은 대구·경북(TK) 3선인 김재원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 서울 중랑을 경선에서 컷오프 된 것을 언급하면서 "김기현 대표나 주호영 의원이나 수도권에서 인지도 있는 분들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영남권 중진의 수도권 경쟁력이 없다는 취지다. 의원총회에서 인 위원장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영남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 시나리오는 선거에 있어서 말 그대로 양념 같은 수준의 이야기"라며 "홍범도 논란과 박정훈 대령 처우, 경제상황 등에 빡친 유권자가 주·김 두 의원의 수도권 출마로 마음이 풀릴 가능성은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만 김 대표가 총선을 총지휘하는 중책을 맡은 만큼 험지 출마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일부 존재한다. 김 대표가 험지 출마를 선언할 경우 영남권 중진은 물론 친윤 핵심 의원들까지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로부터 '영남권 스타 중진들이 수도권에 출마해야 한다는 혁신위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받고 "혁신위에서 아직 제안해 온 바가 없다"며 "제안을 정식으로 해오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영남권 이미지를 벗어나야한다는 취지로 읽힌다'는 후속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