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인사는 대법원장 재량"…'판사 블랙리스트' 무죄 판단 보니

논란의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 무죄 판단
1심 "인사심의관 등이 정리한 것을 결재"
"지시 및 직권 행사 인정할 증거 없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도 존재 확인"
개별 사례 언급하며 "위법 아니다" 판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1심에서 무죄 결론이 난 가운데, 재판부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상급자의 별도 지시 없이 관행적으로 작성해 온 문건이라고 인정했다.

또 해당 보고서 내용을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문건으로 보기 힘들고, 해당 문건을 결재함으로써 대법원장 또는 법원행정처장 등이 적법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320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 중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 작성 지시 혐의 등과 관련해 이같이 판단했다.

◆ 이탄희 전 판사 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이 의혹은 이탄희 전 판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지난 2017년 1월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직에 발령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하며 촉발됐다. 해당 직책은 법원 내 최고 요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 판사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 평가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불복했더니 그에 대한 발령이 취소됐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자체 진상조사를 지시했으나 부실조사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고, 그해 4월 언론을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다. 젊은 판사들이 재조사를 요구하며 단체 행동을 시작했지만 대법원은 재조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강도 높은 진상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을 선별하고 분류하는 '물의야기 보고서'를 작성했단 정황이 드러나면서 거센 국민적 공분을 샀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기소하면서 이를 '법관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정당한 비판 및 독립된 재판 억압'이라고 규정하고,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에 대해 문책성 인사조치를 가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 '물의야기 보고서' 존재 인정했지만…"작성 지시 없었다"

먼저 재판부는 대법원장의 직책에 대해 "법관에 대한 최종적인 인사권자"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근무 성적과 자질에 맞게 법관의 근무 법원과 각급 법원 사무 분담 방법을 정할 수 있는 인사권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 사법부는 전국 단위로 법관을 임용하여 정기적으로 대규모 인사를 하고 있고 매년 1000명 이상 전보인사가 행해지고 있다"며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으로서는 법관 한 명 한 명에 대해 알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즉, 법관 인사를 앞두고 대법원장의 판단을 돕기 위해 인사심의관 등이 정리한 보고서를 양 전 대법원장이 수동적으로 보고받고 결재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다. 특히 특정 법관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하라는 지시는 받은 바 없다는 인사심의관 등의 증언에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어 '물의야기 보고서'에 대해선 "전·후임 인사제2심의관 사이에 업무 인수인계가 되어 상급자의 별도 지시 없이도 해마다 정례적으로 작성해 온 문건이라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대법원장 등의 지시 및 직권 행사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나아가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는 법관 정기인사에 대비해 행정처 차장 이상 직급자들의 구체적인 지시 없이도 결재받아 왔던 문건 중 하나"라며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도 물의야기 보고서의 존재가 확인된다"고 언급했다.

◆ 法 "물의야기 보고서, 위법하지 않다"…사례 언급도

재판부는 또 "물의야기 보고서는 인사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전보인사에 관해 정책 결정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라며 "변칙적인 징계 수단 및 문책 수단으로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물의야기 보고서는 정기인사에 필요한 30~40개 항목의 정책 결정 사항에 관한 보고서 중 하나"라며 "보고서 내용은 개별 법관의 특성과 강·약점, 평판 등을 적절히 수집한 것으로 그 내용이 위법하다거나 부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서 물의야기 보고서에 검토 대상으로 포함된 개별 법관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이 같은 점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례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사회관계망(SNS)에 게시한 판사에 대해 "법관이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국민 신뢰를 저해시키고 재판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할 위험이 있기에 인사권자의 정책 판단 자료로 제공함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또 진행 중인 사건에 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해 법원장 서면 경고를 받거나 다른 법관이 선고한 판결에 대한 비난 등으로 정직 징계를 받은 판사에 대해서도 "징계나 법원장 경고 사항은 인사에 반영할 대상에 해당하고 이를 정리해 물의야기 보고서에 포함한 것은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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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