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님' 어른 옷 세탁 되고, 침구 세탁 안 되고…업무범위 혼란

지난달 예고된 '업무범위 체크리스트' 빠져
'아이 돌봄' 전문 인력…어른 업무까지 맡나
어른 옷 세탁 가능…어른 음식 조리는 불가
"일 거부 어려워…부당 노동 강요될 수 있어"

전날(6일)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의 업무범위를 두고 오해가 증폭되고 있다. 상세한 업무 내용을 규정한 정부 차원의 일괄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 불분명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업무범위의 모호성으로 인해, '아이 돌봄'을 위해 입국한 이들이 '어른'을 위한 업무까지 떠맡으며 과로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입국한 가사관리사들은 4주 160시간의 교육을 받은 후 내달부터 6개월 동안 서울시민의 가정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들은 고용허가제(E-9) 인력으로, 정부가 인증한 '가사근로자법'상 서비스 제공기관에 고용된다.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Caregiving(돌봄) NC Ⅱ' 자격증 소지자들이다. 아이 돌봄 전문 인력인 셈이다.



지난 1일 기준 422가정이 신청했으나 서비스 시작 전부터 업무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일며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아이 돌봄을 제외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다.

고용부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부수적'이라는 문구가 모호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선정한 서비스 제공기관인 '대리주부'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서비스 내용은 '자녀돌봄 및 그와 관련된 가사활동'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이 이유식 조리 및 먹이기, 목욕시키기, 기저귀 갈기, 아이 방 청소 등이 있다. 아이돌봄 관련 업무가 대부분이다.

다만 아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가사업무도 포함돼 있다. 서비스는 1일 4시간, 6시간, 8시간으로 나뉘는데, 일 6시간 이상 서비스의 경우 어른 옷 세탁·건조, 어른 식기 설거지, 욕실 물청소 등의 업무도 할 수 있다. 반면 어른 음식 조리, 어르신 돌봄, 어른 침구 세탁, 쓰레기 배출 등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필리핀 정부와 우리 고용부가 체결한 업무협약을 보더라도 업무범위의 모호함은 여전하다.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가사관리사 채용 시범사업 실행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사관리사들은 필리핀 이주노동부(DMW)가 사전 승인한 직무설명서에 명시된 업무를 넘지 않는 한 동거가족을 위해 '부수적이며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가사서비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 같은 모호성을 해결하기 고용부는 지난달 16일 세부 업무의 범위를 '체크리스트'의 형태로 구비해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와 서비스 제공기관이 계약을 맺을 때 체크리스트를 통해 상세하게 업무 내용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지 않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오히려 복잡해지고 불편해진다"며 우려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업체 측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체크리스트를 세세하게 적으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여기에 담기지 않는 업무가 있으면 어떡하냐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체크리스트 없이 업체와 이용자 간 이용계약서를 통해 구체적인 업무범위가 정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관리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줄어든 셈이다.

또 이용자는 정부 차원에서 설정된 업무범위 외 추가적으로 원하는 업무가 있다면 이용 계약을 수정하거나 서비스 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업무가 가구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의 업무가 과중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16일 성명을 내고 "아동 돌봄에 필수적인 노동 외에도 다른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용주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 직무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취약한 위치의 이주노동자에게 부당하게 노동이 강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업무범위와 관련해 혼란이 없도록 준비했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가사관리사는 이용계약에 사전에 명시된 업무를 수행하고 이용자는 가사관리사에게 직접 임의로 업무지시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용계약 외 지시금지 등 준수사항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했다"고 부연했다.

또 고용부는 "서울시, 서비스 제공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과정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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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