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급증 위험 알고도 방치…뒷북 대응한 국토부·주택금융공사

감사원, 서민주거 안정시책 추진실태 감사 결과 공개
"제때 대응했다면 약 3.9조 보증사고 예방"

국토교통부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부실 관리로 전세보증 제도가 전세사기에 악용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재정 손실이 확대됐다는 감사원 판단이 나왔다.

감사원은 13일 이같은 내용의 서민주거 안정시책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감사는 집값 급등기에 정부의 전세보증 제도가 무자본 갭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건축주와 공인중개사가 공모한 전세사기로 많은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했던데다, 지난해 2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공익감사를 청구함에 따라 실시됐다.

◇국토부 '뒷북 대응'·HUG '조치 미흡'이 사태 악화시켜

국토부는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전세보증한도 하향이 필요하다는 HUG 측의 요청을 방관하면서 적기에 대응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파악됐다.

HUG는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한 2020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총 16차례에 걸쳐 국토부에 담보인정비율과 공시가격 적용비율 하향이 필요하다고 줄곧 요청했다. 2021년 5월 세입자 136명을 상대로 298억원 규모의 깡통 전세 사기를 벌인 이른바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전세보증이 전세사기에 악용되고 있고, 2021년 10월에는 향후 주택 경기와 무관하게 전세보증 사고로 수조 원의 대위변제 발생할 수 있어 재정위험 관리가 시급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토부는 전세보증 전체 사고율이 하락하고 있어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고 잘못 판단해 HUG의 요청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감사 기간 중 확인한 결과 담보인정비율 90% 초과 구간의 2021년 사고율은 7.83%로 전년의 6.84% 대비 상승했다.

이후 전세사기 피해가 심화되자 국토부는 2022년 6월에서야 대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해 지난해부터 공시가격 적용비율(1월·150→140%)과 담보인정비율(5월·100→90%)을 하향 시행했다.

감사원은 국토부의 뒷북 대응으로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 금액은 올해(4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국토부가 HUG의 요청 직후인 2021년 10월에 담보인정비율을 90%로 하향했다면 약 3조9000억원의 보증사고를 예방했을 것으로 봤다.

감사원은 "과도한 보증한도로 인해 전세보증이 전세사기에 악용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국토부의 대응 지연으로 전세보증 사고 급증에 따른 대규모 전세사기 발생 및 HUG 재정 악화 등을 예방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HUG 역시 전세보증을 악용한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추가 심사를 통해 악성 임대인의 전세보증 가입을 거부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최근 3년간(2020~2023년)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 내역을 점검한 결과, 상위 10명의 임대인은 평균 305건(712억원)의 대위변제를 일으켰고, 최초 대위변제 발생 전 평균 455건(899억 원)의 전세보증에 가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HUG가 악성 임대인 판별을 위한 추가 심사를 도입한다면 전세사기 반복 사례들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앞으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국토부에 주의 요구하고, 악성 임대인에 대한 보증가입 거부 방안을 마련하도록 HUG에 통보했다. HUG는 하반기 중 전세보증 50건 초과 가입 임대인에 대해 전세 계약의 적정성 검증 등 추가 심사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지난달 발표했다.

◇임대차계약 12.7%가 미신고로 점검 안 받아…法어겨 임대보증 가입 면제

국토부는 확정일자 부여 현황 정보를 활용하면 임대 사업자의 임대차계약 신고 여부를 전수조사할 수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았다.

이는 다수의 민간임대주택이 지방자치단체의 임대차계약 신고 여부 점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임대보증에 가입하지 않아도 임대차계약 신고가 수리돼 과태료 부과 대상에 누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감사원이 감사 기간 서울시 강서구·관악구와 인천시 미추홀구 등 3개 구를 표본으로 2020년 8월18일부터 지난해 10월25일까지 확정일자 부여현황 정보와 임대차계약 신고 정보를 대조한 결과, 전체 4만34건의 임대차계약 중 5090건(12.7%)이 신고되지 않아 임대보증 가입 여부를 점검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미신고 대상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국토부는 또 현행법을 어겨 표준임대차계약서 서식에 임대보증 미가입 사유로 '보증회사의 가입 거절'을 포함시켰고, 렌트홈에서도 임대사업자가 가입 거절을 선택한 경우 지자체가 신고를 수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상 표준임대차계약서 서식을 만들 때 임대보증 미가입 사유로 ▲가입대상 금액 0원 ▲임대보증금 우선변제금 이하 ▲공공주택사업자와 임대차계약 체결 ▲임차인의 전세보증 가입 등 4가지에 대해서만 인정한다.

감사원이 3개 구에 대한 온라인 임대등록시스템인 '렌트홈'에서 보증회사의 가입 거절 사유로 임대차계약 신고가 수리된 내역을 살펴본 결과, 총 1만3777건의 임대차계약이 수리됐으며 이 중 1만135건(73.6%)은 수리 이후에도 임대보증에 가입하지 않음에도 과태료 부과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확인됐다.

◇고가주택도 임차보증금 대신 월세 올려 보증에 가입

HF는 서민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전세대출보증에 고액 임대차계약이 가입하는 일이 발생하는데도 이를 방치했다. 전월세 구분 없이 단순히 임차보증금만을 기준으로 전세대출보증의 가입 허용 여부를 결정한 탓이다.

내부 규정상 임차보증금 7억원(지방 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전세대출보증 가입을 승인하지 않고 있으나, 임차보증금 대신 월세를 올리면 보증 운영 목적과 다르게 고가 주택도 전세대출보증에 가입이 가능했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HF의 전세대출보증 발급 건에 대해 전월세 전환율을 고려해 임차보증금을 재산정해보니 무려 2123건이 가입 요건을 초과했다. 이 중 주택 가격이 12억원 초과 건은 826건, 20억원 초과 건은 211건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HF에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해 임차보증금을 재산정한 후, 고액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는 보증가입을 승인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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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