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화재 생존자 "화장실 샤워기 틀고 버텨…1시간 뒤 구조"

비상벨 소리 듣고 잠에서 깨 화장실 대피
목격자 "땅 울릴 정도로 큰 '쿵' 소리 들려"
골목에 있는 주정차로 소방차 진입도 난항

"완강기도 (못 봤고), 대피하라는 안내도 없었어요. 화장실에서 샤워기 틀고 버티며 구조를 기다리다가 기절했어요."

부천 호텔 화재 생존자인 A씨는 23일 오후 2시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호텔 앞에서 취재진에게 화재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전날 오후 A씨의 잠을 깨운 건 비상벨 소리였다. 처음에는 화재가 아닌 줄 알았다. 객실 밖이 연기로 가득 찬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불이 났음을 알았다.

간호학과 실습을 위해 투숙하던 A씨는 "비상벨이 네 번 정도 울렸다. 화재가 아닐 수 있어서 기다리다 문을 열었는데 복도 전체가 연기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연기가 자욱해 건너편에 있는 호실의 숫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A씨는 설명했다.

A씨는 곧장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밑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창문을 닫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어머니와 119 소방대원의 전화 안내에 따라 화장실로 대피했다. 샤워기를 틀고 그 아래 머리를 댔다.

그러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A씨는 수건으로 입을 막고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 A씨는 정신을 잃었다.

1시간 뒤 기절한 채로 구조된 A씨는 구급차에서 산소를 마신 뒤에 정신이 돌아왔다.

A씨는 "불이 난 후 안전 방송이나 완강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에 따르면 호텔 내부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투숙객들은 이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사망한 분들도 있는 걸로 안다"며 "딸은 샤워기를 틀고 머리에 대고 있어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의 증언도 이어졌다. 뉴시스와 만난 목격자들은 에어매트가 뒤집혔고, 주정차 때문에 소방차 진입도 어려워 보였다고 지적했다.

불이 난 호텔 바로 옆 호텔에서 4일째 묵고 있는 강모(50대)씨는 "에어매트가 설치됐는데 사다리는 없었다"며 "그러다가 투숙객 1명이 먼저 뛰어내렸는데 모서리로 떨어졌고 에어매트가 뒤집혔다. 당시 바람도 많이 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투숙객 1명이 약 3초 뒤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매트가 아닌 바닥에 떨어졌다"며 "쿵 소리가 나서 근처에 있던 시민이 모두 놀라 쳐다봤다"고 말했다.

화재 호텔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34)씨는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땅이 울릴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소리를 듣고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며 "에어매트도 기울었다"고 말했다.

전날 호텔 주차장 앞에는 에어매트 1개가 설치됐는데 투숙객 2명이 객실 창문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숨졌다. 투숙객 1명은 에어매트 모서리로 떨어졌고 에어매트가 뒤집어지면서 땅으로 떨어져 숨졌다. 곧이어 뛰어내린 투숙객 1명은 에어매트가 아닌 땅에 떨어져 사망했다.


화재가 난 호텔 앞 골목의 주정차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씨는 "골목이 좁고 사람과 주정차가 많아 소방차가 들어올 때 한계가 있었다"며 "불법 주정차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 에어매트가 설치됐던 호텔 앞 도로 바닥에는 하얀색으로 주차 구역 19개가 설정돼 있었다. 그 위에 노란색으로 "계약자외 단속·부과"라는 문구가 있다. 도로 폭은 약 3m로, 차 한 대가 도로 양옆에 주차된 차를 피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호텔 인근 오피스텔 관리인은 "오피스텔 등 근처 입주자들이 시와 계약을 맺고 골목에 주차한다"며 "최근 시행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주차 관련 일을 담당하는 부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호텔 앞 도로에서 거주자 우선 주차장 사업을 시행했다. 해당 도로는 야간 전용으로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주차할 수 있다.

소방 관계자는 "일방통행로인 데다가 저녁 시간대는 차를 댈 곳이 없어 소방차가 처음에 골목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 시간대에 출동하면 주차된 차가 많아 차를 댈 곳이 없고 나무 등 때문에 사다리를 펴기도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현장은 "살려달라"는 외침과 호텔 밖에서 가족을 부르는 목소리, 대피 인원을 확인하는 소리가 뒤섞인 아수라장이었다.

정씨는 "호텔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고 연기도 많이 났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확성기 없이 몇 호실 투숙객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시민의 말소리 때문에 안내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 짚었다.

대한적십자봉사회에서 봉사 나온 70대 조언연씨는 "아줌마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며 "딸이 엄마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전화가 끊어졌다고 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대원들도 뜨거운 곳에서 잠도 못 자고 밤새 구조활동을 하다가 나왔는데 온몸이 물을 갖다 부은 것처럼 땀이 난 상태였다"고 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전날 오후 7시39분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나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23일 밝혔다. 7명이 숨졌고, 3명이 중상, 9명이 경상을 입었다.

현재 치료받고 있는 중상자 2명을 제외한 부상자는 모두 퇴원한 상태로 파악됐다. 이날 오후 12시10분께에는 가벼운 부상을 입고 퇴원했던 호텔 직원 이모(30대)씨가 일하기 위해 호텔을 방문했다가 상태가 다시 악화해 구급차에 실려 이송됐다.

당시 호텔 내부에는 외국인 29명을 포함한 투숙객 68명이 묵기로 예약돼 있었고, 호텔 직원 3명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화재 당시 호텔 내부에 있던 인원과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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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본부장 / 이병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