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사망' 아리셀 화재 첫 재판 공전…"아직 기록 못봐"

유족 측 재판 후 기자회견 열고 분통

근로자 23명이 사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관련 책임자들의 첫 재판에서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아직 증거기록 등에 대한 열람 및 등사가 이뤄지지 못하며 재판이 공전한 것이다.

21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등 혐의를 받는 박중언 총괄본부장 등 이 사건 화재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정식 재판과 달리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박 대표 등은 법정에 나오지 않고 변호인들만 출석했다. 검찰 측에서는 이 사건 수사 등에 투입됐던 검사 6명이 재판에 출석했다.



박 대표 측 변호인은 이날 열람·등사 문제로 구체적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은 "공소장을 받고 바로 부탁했는데 검찰 열람실 사정으로 30일부터 기록 등사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기록을 아직 보지 않은 상황에서 (공소사실에 대해) 말하기 좀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건 기록은 약 3만5000쪽 정도로, 증거기록은 이보다는 조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이 사건뿐만 아니라 재판을 진행해보면 검찰에서 열람·등사를 시작하는 데 한 달~한 달 반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구속 사건의 경우 1심 최대 구속기한이 6개월인데 그 시간을 날리는 것"이라며 "재판 외적인 문제로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수원지검 쪽에서 물적, 인적 시설을 확보해 문제를 좀 해소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최대한 협조해 열람·등사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11월25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혐의 관련한 피고인 측 입장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재판이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되며 재판을 방청한 유족 측은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재판 후 수원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유족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미치겠다"며 "아이가 죽은 지 120일이 지났는데 뭐 하고 있었냐.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눈물이 없으면 살지도 못하고 있다. 23명 목숨가지고 장난하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박 대표는 지난 6월24일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진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 점검 미이행,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 미구비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 대표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아들 박 본부장은 전지 보관·관리(발열 감지 모니터링 등)와 안전교육·소방훈련 등 화재 대비 안전관리상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이번 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2021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무허가 파견업체 메이셀 등으로부터 전지 제조공정에 근로자 320명을 파견받은 혐의도 있다.

이 밖에도 박 본부장은 국방부 납품용 전지의 불량을 숨기기 위해 국방기술품질원의 품질검사에 제출한 수검용 전지를 바꿔치기 하는 등 위계로 품질검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번 화재가 ▲근로자 생명·안전보다 이윤을 더 앞세운 회사의 경영방식 ▲다수의 사고 징후에도 위험을 방치하고 안전관리체계를 갖추지 않은 극도의 안전불감증 ▲불법파견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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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본부장 / 이병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