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2억대 포토존 조형물"…나주시, 의혹 꼬리 물어

A사 직접 생산 증빙자료 제출 요구에 함흥차사
계약과 무관한 여성사업가 B씨 곳곳에 개입 정황
메인 조형물 8개 중 1개 제작 누락, 일부는 무단 임대

"벌써 녹이 슬고 페인트칠이 뜨는데 2억원대라뇨. 디자인업계 종사자로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군요."

중견 조각가 겸 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는 전문가 이모씨는 최근 나주 영산강 정원에 설치된 조형물을 살펴본 후 완성도에 대해 혹평했다.

전체 설치 예산은 2억원대 규모에 재료비만 1억100여만원에 달하지만 엉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남 나주시가 '2024 영산강축제'를 위해 설치한 포토존 조형물을 놓고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조형물 제작·설치 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여성 사업가 B씨가 곳곳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된 데다 제작업체와 디자인 용역업체 선정 과정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B씨는 지난해 말부터 '종합건설회사 대표 겸 디자이너' 직함의 명함을 들고 나주시를 대상으로 수주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28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영산강 정원 포토존 조형물은 나주시가 지난 9월12일 나주 동수농공단지 입주업체 A사에 '1인 견적 수의계약' 방식으로 1억9632만8000원에 발주했다.

직접 생산 인증을 받은 농공단지 입주업체와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금액 제한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해서다.

A사와 계약한 조형물은 '입구 게이트존 입간판'을 시작으로 마지막 '대형 달 조형물'까지 크게 8가지 디자인 콘셉트로 구성됐다.



나주시는 A사와 계약에 앞서 조형물 디자인 확정을 위해 지난 8월5일 광주에 소재한 C사와 520만원에 디자인 용역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같은 달 19일 디자인 안이 나왔고 시장비서실 소회의실에서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PT)이 이뤄졌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날 디자인 용역업체 C사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은 채 여성 사업가 B씨가 PT를 진행해서다.

이런 경우 B씨가 C사와의 연관 관계를 증명하는 위임장과 재직증명서를 나주시에 제출했어야 하지만 취재 결과 증빙 서류는 없었고 확인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나주시는 1차 PT에서 3억~4억원에 제시된 디자인 제작안에 대해 너무 과하다며 2억원대에 맞춰 디자인 수정을 요구했다.

이후 B씨는 사흘 후인 8월22일 수정 디자인 안을 가지고 같은 장소에서 또 두 번째 PT를 진행했고 나주시는 해당 안을 확정했다.


여기서 두 번째 PT에 등장한 디자인 수정안은 용역업체 C사가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 누가 만들었느냐?'는 의문이 일지만 나주시는 콕 집어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C사 대표에게 PT를 진행한 B씨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 연락을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B씨와 관련된 의혹은 이어진다. 조형물 제작·설치 계약 주체인 A사가 나주시에 제출해야 할 성격의 '포토존 제작 설치 용역 내역서 수정안'(재료비·인건비 등 산출) 파일을 B씨 건설회사 직원이 지난 9월9일 나주시에 이메일로 전달해서다.

B씨 회사의 또 다른 직원도 조형물 현장 설치를 증빙하는 작업 모습이 담긴 사진 파일 수십 개를 나주시에 이메일로 보내온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번 계약의 당사자인 A사와 B씨 건설회사는 나주시가 발주한 조형물 제작·설치 계약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다.


농공단지 입주업체 A사의 '직접 생산 불이행'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조형물을 직접 제작했다는 기초적인 증빙자료 제출 요구에 적극 응하지 않고 있어서다.

나주시가 계약 하루 만인 9월13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지급한 재료비 구매 성격의 선급금(1억1178만4000원) 사용 내역 증빙자료의 경우 45일이 지난 시점인데도 제출을 미루고 있다.

A사의 '직접 생산 불이행'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언도 나오고 있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이뤄진 조형물 현장 설치를 A사 대표가 아닌 건설회사 대표 B씨가 주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담당자들은 "B씨가 조형물을 실어와 설치했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수차례 물었으나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형물 디자인의 일방적인 변경도 논란이다. 두 번째 PT에서 확정된 디자인과 다른 디자인의 조형물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나주시 담당자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디자인을 변경한 것을 비롯해 B씨와 관련된 애로를 윗선에 보고했으나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A사는 나주시에 메인 조형물 8개를 제작·납품했어야 했으나 '8번 대형 달 모양 조형물'은 누락했다.

여기에 직접 제작 설치하기로 내역서에 명시한 조명 기능이 내장된 '토끼 모양', '달 풍선 모양'의 조형물도 제작하지 않았고 사전 협의 없이 8개(토끼 5개·달 풍선 3개)를 외부에서 임대해 온 사실까지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대해 나주시 담당자는 "계약서 어디에도 조형물을 외부에서 임대한다고 명시하지 않았고, 사전 협의도 없었다"며 "축제 종료 후 현장에 있어야 할 조형물 일부가 눈에 띄지 않아서 확인한 결과 임대해 온 사실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임대라고 주장하는 조형물은 영산강축제 10여일 전에 열린 '나주문화유산야행축제'에 쓰인 조형물을 재탕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토끼·달 모양 외에도 5개를 추가로 설치해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B씨에 대해선 나주시를 통해 수차례 연락을 요청했고 B씨가 대표로 재직한다는 종합건설회사에도 평일 대표전화로 여러 번 연락했으나 착신 전환만 될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A사 대표는 "모든 포토존 조형물을 직접 제작했고 B씨에겐 디자인만 맡겼다"고 해명했다.

나주시는 포토존 조형물 제작비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에 대해 행정 절차상 준공 전 단계이고 잔금을 완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정 원가 계산을 통해 감액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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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 김금준 대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